의사협회가 현행법상 금지된 낙태를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하고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진료를 중단하는 것 등을 담은 '의사윤리지침'을 공포,논란이 일고 있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일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 의협의 설명이지만 생명경시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최대쟁점인 회생불능 환자 진료 중단의 경우,의협은 98년 부인의 요구에 따라 남편을 퇴원시킨 보라매병원 의사에게 실형이 선고된 뒤 회생가능성 없는 환자의 퇴원요구도 받아들이지 않는 관행이 생긴 만큼 지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본인과 가족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회생불능 상태'의 판단기준이 모호하고 따라서 이를 허용하면 자칫 사람의 목숨이 가볍게 취급될 수 있다며 반발한다. 낙태문제 역시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가 금지돼 있는데도 연간 1백50만건의 낙태가 행해지고, 10대 특히 15세 미만 미혼모가 급증하는 게 현실이다.따라서 무조건 막는 것은 범법자만 양산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종교계를 비롯,어떤 경우에도 낙태는 안된다는 견해도 거세다. 대리모 또한 어떻게든 아이를 갖고 싶어하면서도 입양을 꺼리는 사회풍조 때문에 금전거래가 이뤄지는 만큼 일정부분 허용해야 한다는 쪽과 이란성 쌍둥이 남매를 다룬 MBC드라마 '엄마야 누나야'에서 보듯 부작용이 따른다는 의견이 맞선다. 안락사와 낙태는 세계적으로 결론이 안나는 문제들이다. '국제 의사 윤리헌장'엔 '의사는 인간생명을 수태 시부터 보호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미혼모나 사생아를 용인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무조건 낳아야 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생명문제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현실만 강조되면 생명이 소홀하게 취급될 수 있고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침 자체보다 현장에서 얼마나 신의성실의 원칙이 지켜지느냐일 듯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