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내 북쪽에 '허란춘(荷蘭村)'이라는 마을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네덜란드 마을'이다. 이 곳은 공업도시 선양의 다른 지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잘 정돈된 거리에 고급 별장, 세련된 모습의 공장, 화훼단지, 거대 오락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유럽의 한적한 농촌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 마을은 이름 그대로 네덜란드와 관계가 깊다.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인 양빈 어우야(歐亞)그룹 회장(楊斌.38)이 건설한 것. 그는 지난 94년 선양시정부와 계약을 맺고 이 마을을 개발하기 시작해 '선양의 네덜란드'로 만들었다. 양 회장은 작년 9월 이 곳에서 국제 꽃 박람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허란춘 춘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양빈 회장은 부동산개발 분야 중국 최고 갑부이기도 하다. 포브스지 선정 중국 제2위 자산가. 보유재산은 75억위안(1위안=약 1백55원)에 달한다. 올 7월 홍콩증시에 상장한 어우야그룹 주가가 재산의 원천이다. 난징(南京) 출신의 양빈 회장이 네덜란드로 이민을 간 것은 지난 84년. 그는 3년 후인 87년 네덜란드에서 화훼 생산 및 유통 전문업체인 어우야를 창업했다. 화훼 비즈니스로 거금을 번 그는 90년대 초 중국 부동산 건설 시장에 뛰어들었다. "네덜란드의 꽃 문화를 중국에 이식시키고 싶었습니다. 부동산을 개발해 그곳에 꽃과 과수, 첨단산업, 위락시설 등이 어우러진 종합 산업단지를 조성하자는 계획이었지요. '허란춘'은 그 중 하나입니다. 풍요로운 중국을 건설하는게 나의 꿈입니다" 양 회장의 말이다. 양 회장은 베이징(北京) 광둥(廣東) 쓰촨(四川) 허베이(河北) 지린(吉林) 등에도 허란춘과 비슷한 산업단지를 건설했다. 그가 건설한 산업단지는 '기계 냄새가 나지 않는 공단'으로 알려지면서 해외 기업들이 입주하고 있다. 중국의 얼굴을 바꾸어 놓겠다는 그의 꿈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양 회장이 제2위 갑부로 등장한 것은 중국부동산 산업의 활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포브스지 선정 1백대 중국 부호 중 25명이 이 분야에서 돈을 벌었다는게 이를 말해준다. 베이징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20㎞쯤 떨어진 창핑(昌平)현 마츠코우(馬池口). 부동산 업계 리더들이 중국의 얼굴을 바꿔 놓고 있는 또 다른 현장이다. 시골 마을인 이곳에 가면 3만㎡ 규모의 거대한 대학캠퍼스와 만나게 된다. 학사와 기숙사는 물론 유학생창업원 외국기업단지 오락단지 과학기술원이 들어서 있다. 이 대학 이름은 줘다(卓達). 부동산 개발업체인 줘다그룹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 회사 양줘수 회장(楊卓舒.48)은 본거지인 스좌장(石家莊)을 비롯 하이난다오(海南島) 내몽골 등에서의 부동산개발 사업으로 거부를 움켜쥔 인물이다. 하이난다오의 주요 관광시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 졌다고 보면 된다. 그는 포브스 선정 제15위 재산가이기도 하다. "그동안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교육사업에 나섰습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 장소가 아닌 지식과 산업이 결합된 산.학(産學)단지를 만들 겁니다" 그가 줘다대학 캠퍼스를 만드는 속뜻은 캠퍼스 주변 부동산 개발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각 거점 도시별로 대표적인 부동산개발 업체가 있다. 이들이 해당 도시의 얼굴을 바꾼다. 진화치예(金花企業)그룹의 우이젠 회장(吳一堅.41)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부동산업계의 맹주다. 시안출신인 그는 지난 84년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손에 6백위안을 쥐고 하이난다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제특구로 급성장하던 하이난다오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하이난다오의 한 TV공장 설립에 관여하게 되고 여기서 모은 돈을 들고 92년 금의환향하게 된다. 그는 시안에 오자마자 부동산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시안의 주요 부동산개발과 금융업체, 유통, 농업개발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90년대 초부터 중국 부동산건설 사업은 산업화 시장화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누구든 그 흐름을 탔다면 지금 거부로 등장했을 것이다.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금융 유통 관광 등의 분야로 사업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부동산 왕국을 설립하려는 것이다" 우 회장은 중국의 부동산시장 발전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부동산업계 리더들이 지금 중국의 얼굴을 바꿔가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