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앨 고어 미 대통령(당선 가정)은 최근 승리의 한 주를 보냈다. 탈레반 정권은 퇴각하기 시작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러시아의 전략 핵무기를 3분의 2 이상 감축하는 합의를 했다. 고어 대통령의 지지율은 87%에 육박한다. 부시가 대통령이 된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부시는 대통령의 해외여행이란 스페인 집단거주지역 몇 군데를 방문해서 우정어린 포즈를 취하는 걸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외교정책도 미사일로 마지노선을 구축해놓은 뒤에 벌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미국 유권자들은 대통령으로 경험있는 인물을 제대로 뽑았다. 고어는 평생을 정치판에서 지냈고 8년 동안 부통령 직을 수행했다. 그의 풍부한 인맥은 대테러연대를 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푸틴과의 개인적 친분을 내세워 러시아를 대테러전선에 끌어들였다. '제3의 길'을 토론하는 세미나에서 형성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이념적 공감대는 영국을 든든한 지지세력으로 만들었다. 고어 대통령에게는 리처드 홀브룩 외에도 토니 블레어라는 국무장관이 또 있을 정도다. 홀브룩이 국무장관이라는 사실은 고어 대통령이 거느린 인맥의 질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준다. 고어 대통령이 워싱턴의 싱크탱크에서부터 아이비리그 출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쟁쟁한 인물들을 모두 휘하에 둘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홀브룩은 외교가의 베테랑이다. 독일 대사를 지냈던 경력을 바탕으로 독일을 대 테러 전선에 끌어들였다. 콧대가 세고 자기가 늘 옳다고 하는 고집이 있긴 해도 그게 야만적인 군벌들과 협상할 때에는 위력을 발휘한다. 고어 대통령은 정계에 몸담고 있는 동안 군사전략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쌓았다. 그는 1977년 의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군사문제를 다뤘다. 그의 전쟁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자신감은 국방부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어 대통령은 탄저균 테러에 행정부가 우왕좌왕하는 걸 못마땅해 하고 있다. 그는 질병통제센터가 탄저병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에 몹시 화를 내고 있다. 공항보안 문제가 처리되는 방식에도 불만족스러워하고 있다. 그는 특히 공항보안요원을 연방요원화하는 안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미국인의 피를 손에 묻힌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비난함으로써 의회 합의를 끌어내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고어 대통령에 대한 가장 강한 비난은 '자신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 상황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켜왔다. 그는 대통령 후보에 나설 때는 최고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새로운 민주당원임을 강조해왔다. 권력에 맞서는 시민의 일꾼이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정체성이 없다는 인상을 풍겨왔다. 그러나 9·11테러 사태 이후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뉴욕 쌍둥이 빌딩의 붕괴는 불안정하고 열정적인 남자에게 그가 일생동안 추구해왔던 임무를 안겨주었다. '테러와의 전쟁'이 그것이다. 고어는 하나님이 그를 세상에 보내 이루려고 하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됐다. 정리=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 ◇이 글은 영국의 경제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17일자)에 실린 '앨 고어가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What would it have been like if Al Gore had won last year's election)'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