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틀에 갇힌 작은 용(龍)'(이찬근 지음,물푸레,1만3천원)의 저자는 대학교수가 되기 전에 산업은행 행원,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간부, 매킨지 컨설턴트를 거치며 국제금융 시장에 대해 풍부한 현장경험을 쌓았다. 국제금융 환경의 변화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 이론과 실무에 두루 밝은 그는 한국이 IMF 위기사태 이후 4년에 걸쳐 초국적 금융자본 때문에 '창틀에 갇힌 작은 용'으로 추락했다고 진단한다. IMF사태 이후 시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이 주를 이룬 반면 국가 기능은 크게 위축됐으며 그 결과 한국 경제는 상당 수준 초국적 자본과 글로벌 스탠더드의 영향권 아래 들어갔다고 본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위력 앞에 한국의 금융은 맥없이 주저앉고 국내 저축도 실물 투자로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극히 부진하다는 데 있다. 정부나 엘리트들 중에서는 국가 기능도 시장 기능에 맡기자고 주장한다. 국가 기능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가 전략적인 포인트이다. 종래의 강력한 국가 기능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국가 기능의 내용이 시대에 맞지 않게 됐다고 보아야 하며 이제는 사회적 중간층의 참여를 토대로 국가 기능을 강력히 살리되 그 내용을 바꿔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특수성이 강한 미국식 시장경제 모델을 추종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큰 땅과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은 개방체제를 택하더라도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미미하고 다양한 민족간에 일종의 위계적인 계층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수용될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은 달러화의 패권적 지위와 영어의 본국이라는 이점을 살려 금융서비스업을 전지구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한국은 세계화와 국민경제간의 긴장 구도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으로부터 사회경제 시스템 측면 및 산업전략과 기업문화 측면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네덜란드와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각국은 대체로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로서 한국과 조건이 유사하다. 이들 나라는 경제 규모가 작고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수시로 외부 충격을 받게 돼 신속하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체제를 필요로 했다. 노동단체와 자본가 모임, 그리고 시민단체 등 사회적 중간층(social middle class)이 형성돼 국가 발전의 주역으로 큰 역할을 수행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한국은 어떻게 해야 초국적 자본의 횡포를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해 구체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다. 이 책을 계기로 세계화와 국민경제, 국가와 시장, 자본과 노동, 금융과 실물간의 대립 및 보완관계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가 활발해질 것을 기대한다. 김인철(성균관대 대외협력처장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