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에 빠진 서구사회..'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 9월11일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과 더불어 몇해 전 헌팅턴이 제기했던 '문명충돌론'이 새삼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탈냉전 시대, 이데올로기를 대신해 '문명'이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변수라는 것, 게다가 이슬람과 유교 문명권이 서구 문명에 대한 잠재적인 적대 세력이라는 설정 자체가 그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테러는 문명이 아니라 지극히 야만적인 행위일 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테러를 감행한 측에서는 사태가 정말 그렇게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예측도 나왔다.
하지만 최강대국 미국이 최빈국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보복 전쟁이 계속되면서 '너무 하지 않는가' '대체 사태의 추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하는 난감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 참에 에드워드 사이드(EW Said)의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성일권 편역,김영사,9천9백원)이 번역돼 나왔다.
'오리엔탈리즘' '문화와 제국주의' 등을 통해 동양에 대한 편견과 허위의식의 조작, 그리고 문화와 권력이 어떻게 협력하는지 파헤쳐낸 그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알-아흐람' 'Z매거진' 등에 기고한 글들을 한데 모아 놓았다.
비로소 우리는 이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테러와 전쟁에 얽힌 전체적인 구도와 양상을 균형있게 가늠해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그에 의하면 이번 테러는 종교적 광신론자에 의한 단순한 사건이지 어떤 문명적 음모나 종교적 음모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시온주의자들과 이스라엘이 이번 기회에 아랍인을 핍박하고,나아가 시온주의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백혈병에 시달리고 있는 그가 온 몸으로 써낸 글들이 직접 겨냥하는 것은 바로 오만과 편견에 휩싸여 있는 서구 사회의 허위의식과 지식인들의 비겁함이다.
자연히 말에 날이 설 수밖에 없다.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실을 왜곡하고 수많은 아랍 민중들에게 피와 눈물을 안겨주었다는 비판은 읽는 이의 가슴을 찌르르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아랍과 이슬람을 무턱대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예리한 비판의 칼날을 비켜나지 못한다.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이라는 중간적 존재로서 그는 양쪽을, 그리고 많은 것을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테러 사건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 뿌리 깊은 갈등의 문제점을 고려, 양측의 평화공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평화가 정착되는 그날까지 그는 '언제 어디서나 비판의 칼날을 곧추 세우고 강요된 침묵과 거짓된 평화에 도전'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다하고자 할 것이다.
김석근(연세대 정외과 BK21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