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방문한 서울 송파구 정모(55.여)씨의 아들이 취업자로 분류되는 것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 올초 대학을 졸업한 이씨(28.남)는 13번이나 입사 시험에 낙방한 영락없는 "취업 재수생"이다. "아침 9시에 (이미 졸업한) 대학 도서관으로 출근해 밤 11시까지 취업공부와 직장을 알아보는 쳇바퀴 생활을 한 지 1년 가까이 됐다"며 정씨는 한숨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나 통계청 조사원은 이씨가 일요일마다 두시간씩 중학생을 대상으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20만원을 받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취업자로 분류하고 있다. 이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취업자로 분류된다는 것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씨는 "무슨 말이냐.주위에 직장을 못구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료가 한둘이 아닌데 이들이 모두 취업자냐"며 그럴리가 없다는 말을 연발했다. 가정주부 정모(37.여)씨가 취업자로 분류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 정씨는 일주일에 2~3번씩 서울 서대문구 집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를 돕고 약간의 "수고비"를 받는다. 정씨는 "친구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점심시간에 잠깐씩 도와주고 있을 뿐이다. 취업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현장조사 공무원은 "이런 경우 스스로를 취업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취업했느냐"고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마치 수사관처럼 갖가지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해 수입있는 일을 했는 지 여부만 알아낸다"고 말했다. 지방 대학생 장모(20.남)군은 방학이 되면 취업자로 돌변한다. 방학이 되면 서울로 올라와 PC방을 운영하는 삼촌을 도와주고 용돈을 받기 때문. 장 군은 "내가 취업한거라고요? 실컷 오락 하다가 가끔 청소만 해주는데요? 게다가 전 학생인데."라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 군은 일하는 동안에는 취업자로 분류되지만 방학이 끝나 일(?)을 그만둬도 실업자가 되지는 않는다. 학생이나 주부는 하던 일을 자발적으로 그만두면 "비경제활동인구(15세이상 인구중 일할 능력이나 의향이 없는 사람)"로 분류돼 취업자와 실업자 어느쪽에도 포함되지 않게 된다. 쉽게 말해 취업자는 될 수 있어도 좀처럼 실업자는 되기 힘들다는 얘기다. 김희복 현장조사 담당 공무원(8급)은 "최근 PC방 편의점 음식점 등 임시직을 요구하는 직장들이 속속 생기고,음식.숙박업이 활황을 보이면서 이같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주부층인 30세 이상 여성 취업자 수는 올 1월 6백10만2천명에서 지난 10월 7백만명 수준으로 90만명이나 늘었다. 60세 이상 "노년층" 취업자 수도 1백81만6천명에서 2백49만6천명으로 68만명 가량 증가했다. 이들중 상당수가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임시직이라는 것이 통계청의 설명. 이들이 취업자가 되면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게 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실업률이 떨어지게 된다. 실업률이 낮아지는데도 실업 급여로 나가는 돈이 늘어나는 비밀도 상당부분 여기에 있다. 올들어 9월말까지 실업급여로 지급된 액수는 6천3백3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3천5백11억원)에 비해 80.4%나 늘어났다. 노동부는 이 추세대로 가면 연말까지 8천7백억원이 지급돼 외환위기 직후인 98년(7천9백91억원)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실업률은 98년(연간 6.8%)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정부나 민간에서 단순히 실업률만 갖고 전체 고용사정을 파악하려 하기 때문에 통계청 실업률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비난하는 것"이라며 "보조지표로 발표하는 구직기간별 실업자 수 임시.일용직 비율 구직 단념자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정확한 고용사정을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통계청의 취업자.실업자 기준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사용하는 국제표준"이라며 "한국적 현실을 반영해 실업률 통계를 따로 만들 경우 오히려 작위적인 통계가 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