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의 '이슈탐구'] '대기업규제 강화냐...완화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재벌규제 완화문제를 둘러싸고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한시가 급하다던 정부.여당이 자체안을 만드는 데만 6개월여나 허송세월한 것은 차치하고 우여곡절 끝에 정부.여당안의 윤곽이 나오자 이번에는 이를 두고 종잡을 수 없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압력에 굴복해 너무 많은 규제를 완화했다"(일부 시민단체)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규제가 완화되기는커녕 되레 강화됐다"(재계)는 상반된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규제 합리화(Re-regulation)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여당이 제시한 방안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재벌에 대한 5대 핵심 규제중 출자총액 규제는 완화하는 대신 다른 4대규제(채무보증금지, 상호출자금지, 내부거래금지,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는 강화하는 내용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출자총액 규제와 관련해서는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 (20대)에만 적용토록 돼 있어 21∼30대 기업집단은 규제에서 제외시키도록 돼 있다.
아울러 20대 중에서도 부채비율 1백% 이하 기업집단과 공기업인수, 외자유치, 관련업종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한다는 복안이다.
이렇게 되면 출자총액 제한은 유명무실해져 선단식 경영을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시민단체 등의 주장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세계에서 유일한, 대표적 낡은 규제인 출자총액 규제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업들의 목을 죄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한다.
완전히 폐지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재계 입장에서 더욱 불만인 것은 30대 기업집단에만 적용되던 채무보증금지 등 다른 4대 규제를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집단으로 확대하겠다는 대목이다.
이렇게 되면 30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폐지되기는 커녕 사실상 50대로 확대돼 되레 규제가 강화된다는 것이 재계의 반론이다.
이렇게 볼 때 재벌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해 경기활성화를 도모하겠다던 당초의 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포장만 규제완화지 실제로는 규제강화에 다름아니다"는 재계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채무보증 금지, 상호출자 금지, 내부거래 금지, 금융계열사 출자금지 등은 이미 다른 법률에 의해 규제를 받고 있는 만큼 공정거래법에 의한 중복규제는 폐지돼야 마땅한데도 되레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출자총액 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다른 규제를 강화해 권한을 유지하려는 공정위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계열사간 채무보증은 은행법에 의한 60대 주채무계열제도와 외국환거래규정 등에 의해 직접규제되고 있으며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 법인세법 등에 의해 간접규제 되고 있다.
또 상법에서는 회사 자산의 가공적 증대를 억제하기 위해 모자관계 회사간(출자지분 50% 이상)에 상호주식 보유를 금지하고 있으며 모자관계가 아닌 회사가 10% 이상의 주식을 상호 보유한 경우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계열사간 상호출자에 대한 견제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개별법령에 의해 내부거래 및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도 규제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4대 규제를 31대 이하 기업집단에 확대 적용하는 것은 재검토돼야 한다.
기존의 공정거래법에 의한 중복규제를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기업 규제조치가 정비돼야 한다.
재벌개혁의 알파요 오메가는 지배구조 개선이라 할 수 있는 만큼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 출자총액 제한 같은 직접적, 차별적 규제에 의존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난다.
상호 출자금지 등 꼭 필요한 규제를 시장규율이 아닌 차별적인 정부 규제로 대체하려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는가.
이런 규제가 계속된다면 글로벌 경쟁에 노출돼 있는 국내 대기업은 결국 고사하거나 규제를 피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논설.전문위원.경제학 박사 kghwcho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