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5:48
수정2006.04.02 05:50
"옛날처럼 화끈하게 밀어붙일 수도 없고 지켜만 보자니 잘 될 것 같지는 않고..."
금융당국의 중견 공무원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고민이다.
귀 기울여 듣다보면 드러내 놓고 칼을 휘둘렀던 '관치금융' 시절에 대한 향수도 감지된다.
설(說)은 설설 끓는데 좀체 결실은 맺지 못하는 은행 합병논의를 쳐다보는 금융당국자들의 시각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수십조원씩 투입한 공적자금 회수에 부담을 느끼는 재정경제부도 그렇지만 금융감독위원회도 어떻게든 1∼2건은 합병건수를 더 만들어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힌 분위기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나"라며 촉각을 곤두세우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돌아가는 형편을 다른 부처에 물어보자니 새삼 혼자만 모르고 있는 것 같고….
제일 난감해 하는 부류는 과장급이하 실무자들.
"우리야 신문에 나는 것 보고 겨우…"
합병 논의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부총리나 위원장과 같은 '윗선'에서나 감지할 뿐 자기들에게는 최신 정보가 좀체 들어오지 않는다는 푸념이다.
"시장중심으로 자율금융 시스템을 만든다고 수없이 강조해 놓았으니 들어오라고 해서 물어볼 수도 없고…"(모 과장)
업무파악 차원에서 합병논의를 확인한다해도 은행(시장)에서는 당장 관의 압박으로 받아들이기 꼭 알맞은 상황인데다 정권말기이다보니 서로 간에 몸 사리기도 양해사항중 하나다.
이근영 금감위원장도 애매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조만간 합병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가 파장이 커지자 "은행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배길 것이라는 원론적인 얘기"라면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속으로는 합병이 성사되길 애타게 바라면서도 은행명이 거론되고 시기까지 언급되는 기사가 나오면 좌불안석이다.
지난 주말엔 "은행 합병은 구체화되기 전에 쓰지 말고, 쓰더라도 '정부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하지 말아 달라"는 '협조문'까지 나왔다.
재경부 금감위 한국은행의 공보실장 공동명의로 나온 이 '언론보도 협조문'은 스스로도 심했다 싶었던지 배포 10분만에 수거해가는 촌극도 빚어졌다.
"내년에는 두차례 선거도 있고 이래저래 합병여건은 더욱 나빠진다"
성과는 내고싶고 '힘'은 쓰기 어려운 처지인 재경부나 금감위의 다급한 심정이 이 말 속에 들어 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