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노벨 경제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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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노벨(1833∼96)이 노벨상을 만든 연유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오보사건이다. 1888년 파리의 한 신문이 형 루드비히를 그인줄 잘못 알고 내보낸 '죽음의 상인, 드디어 사망'이라는 기사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 '알프레드 노벨'에서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의 대상이었던 반전주의자 버사 킨스키('무기는 이제 그만' 저자)의 비난(다이너마이트로 돈을 벌었다는)에 자극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평생 혼자 산 노벨은 1889년 작성했던 유언장을 죽기 1년전인 95년에 고쳐 쓰면서 3천3백만크로네의 재산중 1백만크로네만 조카들에게 주고 나머지는 노벨재단에 넘겼다.
유언장엔 노벨상의 분야와 주관처 등을 명시했다.
유산을 못받게 된 조카들이 유언장 집행중지 소송을 내고 스웨덴 학자들이 국적불문 조항에 불만을 터뜨리는 바람에 집행은 늦어졌다. 하지만 노벨의 조수였던 솔만의 노력 덕에 1901년 마침내 문학 화학등 5개부문의 첫 수상자가 배출됐다.
경제학상은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이 설립 3백주년을 기념해 기금을 노벨재단에 기탁함으로써 노벨상에 편입됐다.
69년 노르웨이의 프리시와 네덜란드의 틴베르헨이 처음 받은 뒤 올해까지 33회에 걸쳐 모두 49명이 영예를 안았다.
이 가운데 미국이 34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영국이 4명,스웨덴과 노르웨이 각 2명,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소련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인도가 각 1명씩을 배출했다. 스웨덴의 경우 뮈르달(74년)과 올린(77년)등 2명을 배출했지만 80년대 이후엔 한 사람도 못내고 있다.
노벨가(家)의 후손들이 노벨경제학상에서 '노벨'이라는 이름을 빼달라고 주장한다는 소식이다.
97년 9월에도 스웨덴 한림원이 같은 이유로 노벨경제학상 철폐를 주장했으나 유야무야 됐었다.
97년 수상자인 머튼과 숄즈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투자실패 등 흠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노벨경제학상은 여전히 최고의 명예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의 이름이 과연 바뀔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