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때문에 목숨을 버릴 것까진 없었는데…. 하지만 빚을 갚으려면 그 길 밖에 없었습니다. 부친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거지요" 쌀의 고장인 일본 니가타현의 한 소도시. 3대째 소규모 직물사업을 꾸려오고 있는 38세의 젊은 사장은 1년 전 세상을 뜬 아버지를 생각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자 부친은 보험금 2천만엔으로 부채를 청산하라며 자살이라는 마지막 길을 택했다. 언제 들어올지 모를 기약 없는 일감,기계가 멈춰 선채 적막에 휩싸인 공장,보수 관리를 못해 낡아빠진 장비….젊은 사장은 당장이라도 다른 밥벌이로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가업을 접는다는 죄의식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중국산 저가제품에 밀려 쑥대밭이 된 직물제품의 명산지 '미쓰케'. 인구 4만4천여명의 소도시를 덮친 시련을 일본의 한 신문이 르포기사로 상세히 전해 눈길을 끌었다. 미쓰케는 30년 전만 해도 1백여개의 공장이 들어선 직물제품의 메카였다. 동네마다 직물 짜는 기계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직물을 짠다는 단어와 일만엔의 합성어인 '가차망'이란 애칭이 따라다녔다. 기계를 한번만 돌리면 1만엔 지폐 한장은 거뜬히 벌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러나 4년 전부터 사정은 급변했다. 불황 파고가 거세진데다 중국산 제품은 미쓰케를 수렁으로 밀어넣었다.일감이 끊기고 직물업체들이 줄도산하면서 이들을 상대로 재미를 봤던 니가타중앙은행도 99년 문을 닫았다. 은행파산으로 돈줄이 막힌 후 금년 3월까지 미쓰케에서는 자살이 유행병처럼 돌았다.1년 반 남짓 동안 무려 8명의 기업인이 목숨을 버렸다. 경제회생이 간절한 일본이 고이즈미 내각 출범후 7개월을 맞았다. 구조개혁으로 일본 경제를 살리겠다는 게 현정권의 구호였지만,경제지표는 최악의 기록경신을 멈추지 않고 있다.그런데도 정치권에선 정책논쟁이 끊이지 않고,총리와 여당이 주도권 싸움까지 벌이고 있다.중소기업인들이 부채와 목숨을 바꾸고,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도 정치권은 명분싸움으로 날을 지새는 현실이야말로 경제우등생 일본의 쇠락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후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