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마이산'] 곳곳에 自然史 .. 전설 '한보따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어찌 이리 생겼나.
진안 마이산을 대하는 시선은 늘 경이로움으로 넘친다.
불끈 솟아 마주한 두 봉우리가 볼수록 새롭다.
쫑긋 세운 말의 귀(馬耳)를 닮은 윤곽이며 꺼칠하게 굳어버린 콘크리트더미에 다름없는 겉모습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대체 어떻게 생겨났고 또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대전.통영고속도로로 한결 가까워진 마이산을 향했다.
자연.역사이야기를 듣고 짧은 듯 하지만 기분좋은 트레킹을 곁들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북부들머리에서 시작, 암마이봉(6백73m)과 숫마이봉(6백67m) 사이의 잿마루(천왕문)를 넘는 길을 택했다.
길은 걷기 편하게 나무계단으로 돼 있다.
마지막 낙엽이 흩날리는 사이로 잘 익어 매달린 감이 얼굴을 감추고 있다.
가볍게 손잡고 쉬엄쉬엄 오르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아이들과 함께한 한 가족이 뒤따른다.
잿마루에서 왼쪽 숫마이봉으로 나 있는 돌계단 끝에 큼직한 굴이 보인다.
화암굴이다.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고 석간수(요즘은 가뭄으로 물이 말랐다)를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알려진 곳이라고 한 할머니가 기억을 더듬는다.
숫마이봉 오름길은 화암굴까지가 끝, 암마이봉으로 이어진 짧은 길을 따르면 호남벌의 탁트인 모습을 볼수 있다.
내려가는 계단길도 편안하다.
두 봉우리 사이로 가득 쏟아지는 햇살이 따사로워 일부러 걸음을 멈춘다.
계단끝 숫마이봉을 배경으로 은수사란 작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금척스님이란 별명까지 얻은 주지스님이 보물처럼 여기고 있는 몽금척도와 금척의 복제품이 있다.
금척은 이성계의 왕조창업 전설과 관련이 있다.
이성계는 꿈속의 신선으로부터 훗날 왕이 될 것을 예감케 하는 금척을 받았는데, 그 배경이 마이산과 똑같았다고 한다.
이성계는 고려말 황산에서 왜구 아지발도 일당을 쳐부순 뒤 돌아가는 길에 마이산에 들렸었다.
왕권의 상징물인 일월곤륜도도 마이산의 형상을 그린 것이라고 전한다.
은수사 경내에는 이성계가 먹다 뱉은 씨에서 싹을 틔웠다는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386호)도 있다.
이씨 성을 나타내는 오행의 목(木)기운을 승하게 하고, 목과 상극인 금(金)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마이산을 속금산(束金山)이라 부르기도 하는 등 이성계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
은수사는 또 하늘을 향해 뻗쳐 어는 거꾸리고드름으로도 유명하다.
은수사 아래쪽으로 가면 탑사를 만난다.
암마이봉 남쪽 절벽 아래 크고 작은 80여기의 돌탑이 신비감을 더해주는 곳이다.
1885년 수도를 위해 들어온 이갑룡 처사가 근방의 돌들을 모아 쌓았다고 한다.
이성계가 억센 지기를 누르기 위해 쌓은 것이란 설과 몽골군이 만든 것이란 설도 있다.
탑사만을 보고 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시선을 잡아끈다.
마이산의 자연사를 가장 확실히 엿볼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암마이봉 사면이 콘크리트덩어리처럼 보인다.
군데군데 크고 작은 구멍이 벌집같이 뚫려 있다.
아주 옛날 이 지역은 호수였는데 지각변동에 의해 바닥이 솟아올라 봉우리가 됐다는 것이다.
탑사에서 더 내려가면 금당사가 있다.
괘불탱화(보물 1266호), 1천년이 넘은 통은행나무로 만든 본존 아미타여래불상 등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단군 이성계 세종대왕 고종황제와 순국선열 33인의 위패를 모신 이산묘, 이성계가 황산대첩후 이곳에 들러 말을 묶었다는 주필대 등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진안=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