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 생명환경과학연구소의 박충모 박사(45)는 우리나라 식물학계 최고의 "스타"로 꼽힌다. 열악한 식물학 연구여건 속에서도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셀(Cell)지에 논문을 실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국내 연구자가 셀에 데뷔한 것은 생명공학연구원 류성언 박사와 박 박사 둘 뿐이다. 특히 국책 연구소가 아닌 실용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기업 연구소 연구원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업적을 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그러나 이런 성과를 낸 박 박사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33살이란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다른 과학자보다 10년은 늦게 출발했다.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5년간 중학교에서 생물 교사 생활을 했었습니다.부모님은 교육자의 길을 가기 원했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만은 떨칠 수 없었습니다.아이들이 있었던데다 아내는 임신중인 상황에서 탄탄한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결정하기란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습니다" 유학을 결심한 후 그는 2천달러를 갖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논문과 서적을 철저히 읽는 것 뿐이었다. 하루 3∼4시간 잠을 자는 것을 제외하고는 매일 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했다. "아침에 잠깐 집에 들어가 세수한 뒤 도시락을 싸들고 다시 학교에 간 적이 많았습니다.문제는 가족들이었습니다.아내와 아이들에게 객지 생활은 너무나 무서운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오후 10시 이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실험실 책상위에서 잠을 재우고 다른 사람이 출근하기 전에 깨워 집에 보낸 적도 많았습니다" 유학 4년여만에 박사학위를 땄고 박사후과정을 마친 뒤 1996년 귀국한 박 박사는 식물학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식물의 성장을 조절하는 두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빛과 같은 외부환경 및 식물 자체의 조절 프로그램이다. 이 둘의 상호작용으로 식물의 성장이 조절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어떤 원리로 이뤄지는지는 이전까지 규명되지 않았다. 박 박사는 '브라시노스테로이드'란 생장호르몬이 '프라2'라는 소분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식물성장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빛이 없으면 콩나물처럼 줄기가 비정상적으로 자라나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셈이다. 박 박사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빛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물의 개화시기를 조절하는지 원리를 밝히는 연구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 식물의 성장 원리를 밝혀내면 생산성을 크게 높이거나 환경에 대한 저항력을 대폭 향상시킨 농작물을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식물에 대한 그의 애정도 남다르다. "아무래도 인간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식물에 대해 많은 편견이 존재합니다.그러나 식물은 환경에 적응하는 측면에서 오히려 동물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합니다.식물들도 의지가 있고 감각이 있습니다.자연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