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세계적 기업들이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차이나 러시'다. 그들은 이제 중국 비즈니스맨들과 곳곳에서 부딪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차이나 상술'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개혁개방 20년을 거치며 이들의 상술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가. 이는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도 커다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시리즈를 통해 '차이나 상술'의 발전 모습을 추적해 본다. ----------------------------------------------------------------- 중국인의 특성을 말할 때 흔히 제기되는게 '만만디(慢慢的)'다. 느리다는 뜻. 우리나라의 많은 비즈니스맨들은 '중국인=만만디'라는 고정관념으로 중국사업에 나선다. 과연 그럴까. 베이징(北京) 주재 중견 무역업체 상사원인 K차장이 최근 겪은 일이다. 그는 중국산 슬래브(철강 중간재)를 수입하기로 했다. 베이징에서 승용차로 약 3시간 가량 떨어진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에서 파트너를 찾았다. 그에게 샘플을 보내달라고 했다. 며칠 기다릴 각오를 했다. 그러나 전화가 끝나기 무섭게 그 파트너는 승용차를 탔고, 정확히 3시간 반만에 베이징으로 와 샘플을 건넸다. K차장이 선적일 가격조건 등을 묻자 파트너는 핸드폰으로 본사에 연락, 그 자리에서 답을 줬다. K차장은 파트너의 신속함에 감탄했다. 그 날 오후 그는 탕산으로 가는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이후 비즈니스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K차장의 사례는 비즈니스에 관한 한 '만만디'는 옛말이 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의 비즈니스맨들이 빨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행동 속도뿐만 아니라 선진기술, 새로운 경영체제 등을 받아들이는 데도 빨라졌다. 비즈니스 마인드가 열려 있다. 중국의 정보통신기술이 급신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월 가전업체인 하이얼(海爾) 본사 대회의실. 사업본부장회의가 열렸다. 미국법인 대표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그는 "냉장고 냉장실을 상하로 양분하는 중간 받침대 때문에 아래 부분 음식을 꺼내기가 힘들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그 자리에서 '검토하라'는 장루이민(張瑞敏) 사장의 지시가 연구진에게 떨어졌다. 이튿날 오전 미국법인 대표 앞에 냉장실 모형이 제시됐다. 연구진이 밤을 새워 새 모델을 개발했던 것. 그 제품은 2개월만에 칭다오(靑島)공장 라인에서 양산됐고, 지금 미국 월마트에 납품되고 있다. 그 속도가 하이얼을 미국 소형냉장고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만든 이유다. 그들이 속도를 높이는 이유는 체제변화와 무관치 않다. '만만디'는 개혁개방 이전 계획경제시절에나 통하던 유물이다. 그러나 평등주의가 깨진 지금 중국인은 돈을 향해 달리기를 한다. 단돈 1원의 가능성만 보여도 그들은 '풀 스피드'로 질주한다. 특히 상대 파트너를 반드시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거나, 협상에서 불리한 조건에 처할 경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속기를 밟는다. 중국 상인들은 전통적으로 돈에 민감하다. 그들은 특유의 돈 감각과 속도를 결합, 비즈니스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중국인=만만디'라는 등식은 깨진지 오래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