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을 조성하게 만든 주범들이 7조원이나 되는 재산을 빼돌렸는데도 정부는 사실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감사원으로부터 나왔다. 국민 혈세로 조성한 공적자금 1백50조원중 12조원은 잘못 사용됐거나 관리 담당자들에 의해 횡령당한 것으로 드러났고 진작에 정리됐어야 할 부실기업은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 등 건전한 기업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들 뒤에서 기생하고 있었다는 보고 내용. 정부는 부실 기업주들의 은닉 재산을 찾아내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합동조사단을 만들겠다고 급조된 대책을 내놨지만 이미 늦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실기업주들이 돈을 빼돌리기 시작한지 2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야 나섰으니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미래를 바라보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목소리다. 특히 나라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공적자금 원금과 이자의 상환문제는 치밀한 검토를 거쳐 미리부터 국민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의견이다. 상환스케줄 조정, 손실금액을 처리할 방식과 시기, 재정 악화 방지대책 등이 정부가 처리해야 할 숙제다. ◇ 예고된 재정악재 =정부가 국제 기준에 따라 집계하는 국가채무 규모는 지난 2000년말 현재 1백19조7천억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3.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중 가장 양호하다. 그러나 미래는 그렇게 밝지 않다. 공적자금과 연금 부족액이라는 두가지 메가톤급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정부가 갚아야 할 공적자금은 원금과 이자를 합쳐 아무리 적게 잡아도 1백40조원이 넘는다. 원금 1백4조원에다 이자부담 42조2천억원을 합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미 발표한 대로 공적자금 원금의 상환기일을 최장 20년간 연기할 경우다. 이자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손실액도 그만큼 증가하게 된다. 지난 8월 발행된 예보채 7년물 금리(6.18%)를 기준으로 할 경우 추가 이자부담은 1백30조원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공적자금은 정부 재정에 2백70조원 수준의 우발채무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연금 잠재부채 역시 큰 걱정거리. 전문가들은 연금 분야에서 2백30조원 가량의 돈이 모자라 결국엔 정부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얼마나 회수할 수 있나 =공적자금은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손실을 예상하고 투입한 돈이다. 따라서 원금의 상당 부분을 포기한 상태다. 미국도 저축대부조합(S&L) 파산사태시 2천2백69억달러를 투입해 1천3백88억달러를 회수하는데 그쳤다. 그나마도 회수금액 모두를 재투입, 전액 손실 처리했다. 그 결과 이자 비용까지 합쳐 총 4천8백99억달러의 손실을 냈고 이 중 4천2백63억달러는 정부 재정에서, 6백36억달러는 민간에서 부담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0월 현재 37조7천억원을 회수, 25.0%의 회수율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회수금액 대부분은 재투입된 상태다. 최종 손실이 얼마나 될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이제까지의 투입 금액 기준으로 50% 이상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손실률을 50% 정도로 가정할 경우 회수가능 금액은 70조∼80조원이며 손실액은 이자까지 포함해 2백조원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낙관적으로 전망해도 투입액 1백58조원중 1백35조원(공적자금 만기 20년 연장시 추가 이자부담 1백30조원 제외)은 손실처리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 정부가 해야 할 일 =인정할 것은 빨리 인정하고 대책 마련에 전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적자금 예상 손실액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 정부는 2002년에 만기도래하는 원리금 5조7천억원중 4조5천억원 어치를 10∼20년간 만기 연장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한걸음 더 나아가 2002년 이후 원리금 상환부담에 대한 대책도 시급히 제시하는 것이 옳다. 2003∼2008년엔 매년 20조원 이상의 원리금 만기가 몰려 있다. 공적자금 예상 손실액을 매년 재정에서 조금씩 떠안아야 하는 작업도 중요한 과제다.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떠안지 않고 손실이 최종 확정된 뒤 부담한다면 재정에 갑작스런 부담이 발생, 국가 신인도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재정의 건전성을 높일 수 있는 종합적인 재정관리 대책이 시급하다는게 재정.금융학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주장이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