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6:10
수정2006.04.02 06:12
지난 10월 17일 대우종합기계가 창원1공장에서 개최한 "대우국제공작기계전시회(DIMF2001)".
CNC선반등 첨단 공작기계 54기종을 새로 선보인 전시회장엔 6백여명의 해외딜러및 고객들이 북적거렸다.
해외딜러와 고객들은 항공료를 자비로 부담하면서 전시회를 찾았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신호였을까.
대우종합기계는 지난달 30일 2년3개월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지난해 4.4분기에만해도 6백9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나 올해 3.4분기에는 5백3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올해 전체적으로는 1조5천5백억원의 매출에 8백50억원의 경상이익을 올릴 것으로 회사측은 낙관하고 있다.
대우종합기계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은 지난 99년 8월.지난해 10월23일 대우조선과 분리되기전 대우중공업 시절이었다.
대우중공업이 그룹의 자동차 사업부문등 계열사에 대한 자금줄 역할을 한 업보였다.
대우중공업에서 분리됐지만 대우종합기계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해외 경쟁업체들의 흠집내기로 부실기업이란 딱지가 붙어 영업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미지 개선이 급선무였다.
무엇보다 "대우중공업에서 분리돼 더 이상 그룹의 계열사를 지원하지 않게 됐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내부적으로는 노사단합에 나섰다.
그런 노력이 지속되자 등을 돌렸던 해외고객들이 하나둘씩 대우제품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상호나 제품명에서 "대우"를 빼지 말아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신뢰의 표시였다.
회사를 살려보자는 노사간의 믿음은 무분규로 나타났다.
워크아웃 이후 2년 연속 분규없이 임금.단체협상을 타결지었다.
총사령탑인 양재신 대우종합기계 사장은 내부체질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할 수 있다"는 뚝심이었다.
"뉴스타트(NEW Start-2000s)"라는 경영혁신활동을 전개했다.
현금흐름 중심의 이익창출 경영,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경영,품질우선.기술우위 경영,개방적이고 투명한 경영,현장중시 경영이 골자다.
양 사장은 한달의 절반가량을 인천공장 창원1,2공장 현지를 돌아다니며 살다시피했다.
뉴스타트 퍼트롤이었다.
경영상황을 유리알처럼 직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품질혁신과 수익성 제고를 위해서는 6시그마 운동을 도입했다.
굴삭기,공작기계등 핵심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저수익부문을 통폐합하거나 독립 분사시켰다.
올해까지 소재부문등 21개 아이템과 4백47명의 종업원을 떼냈다.
재무구조도 개선해 나갔다.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과 소결공장을 처분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주) 보유지분도 팔려고 내놓은 상태다.
창원및 의왕 사원아파트는 매각완료했으며 영등포공장 부지등은 매각작업이 진행중이다.
인력 구조조정의 아픔은 컸다.
99년 8월말 6천7백76명이었던 인력은 올10월말 4천4백87명으로 33.8%나 줄어들었다.
이런 와중에도 수출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독일의 바우마전시회,프랑스의 국제물류전시회,중국의 국제공작기계전시회등에 빠지지 않고 참가해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했다.
그 결과 올들어 10월말까지 수출실적은 5억3천만 달러. 대우종합기계는 워크아웃 졸업을 발판으로 앞으로 중국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건설중장비는 중국 현지공장에서 생산하지 않는 대형제품 위주로 수출을 확대시켜 나가기로 했다.
공작기계는 내년 2백대,2003년에는 2백50대를 판매목표로 설정했다.
시장점유율 10%대에 진입시켜 굴삭기와 더불어 중국내 1위업체로 발돋움한다는 전략이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