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라는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이룬 기업들에 이처럼 딱 들어맞는 속담도 없다. 한때 지옥 문턱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기업인 만큼 경영구조가 이전보다 오히려 더 탄탄해진 것이다. 대우조선(옛 대우중공업)이나 일동제약 벽산건설 등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이같은 수난을 겪은 것은 지난 1998년. 97년말 불어닥친 외환위기와 경기침체로 경영이 급속히 악화된 기업이 부지기수였다. 제 힘으로 위기극복이 어려웠던 이들은 채권단에 백기투항했다. 외환위기 이후 워크아웃을 신청한 기업은 무려 1백6개사에 달했다. 그리고 3년가량이 흐른 지금. 올 9월말까지 9개사는 탈락했고 동아건설 등 12개사는 워크아웃이 중단됐다. 그리고 44개 업체는 졸업을 했거나 졸업을 추진하면서 재생의 길을 걷고 있다. 누구나 다 그 어려웠던 시기를 극복하고 정상기업으로 재탄생하지는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위기를 극복한 기업들의 성공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채권단 경영진 종업원'이라는 삼각 축의 일치단결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벼랑 끝에 몰린 기업을 평지로 이끌어 내는데는 이들 '삼두마차'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우선 채권단과 주관은행의 시기적절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기업이 원활하게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기본이고 구조조정 작업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성공사례로 꼽히는 대우조선과 대우종합기계를 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옛 대우중공업을 3개사로 분할하는 시도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채권단 내부와 소액주주의 반발이 있었다. 회사 분할은 기존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이근영 산은 총재 등은 소액주주로부터 형사고발까지 당하는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뚝심있게 몰아붙였다. 대우중공업 분할을 담당했던 산은 최익종 팀장은 "첫 시도인 만큼 안팎의 반발이 컸지만 대우중공업을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판단돼 밀어붙였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 대우조선과 대우종합기계는 정상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워크아웃 기업은 아니지만 위기에 처했던 쌍용양회의 경우도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의 절묘한 지원으로 회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부실이 많은 쌍용양회가 일본태평양시멘트로부터 6천억원의 자본금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업체가 쌍용양회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위성복 조흥은행장이 직접 만나 회사의 전망을 설명하기도 했다. 위 행장은 "쌍용양회가 확실히 회생할 수 있고 채권단도 지원하겠다는 점을 강조해 일본업체에 신뢰감을 줬다"고 말했다. 경영진의 사심없는 투명경영과 피나는 자구노력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최근 부실기업주들이 수조원대의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감춰 놓은 사실이 감사원으로부터 적발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대주주가 경영권을 고집하고 채권단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 이런 기업들은 회생하려고 해도 되살아나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공기업들은 대주주나 경영진의 적극적인 협조가 회생의 핵심요건이었음을 잘 말해준다. 채권단 지원과 함께 이뤄진 감자(減資.자본금줄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들도 많다. 사재를 털어 회사자금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벽산건설의 경우 경영진은 워크아웃 이후 17개에 달하던 계열사를 6개로 줄였다. 매각대금은 전액 부채를 갚는데 썼다. 직원도 당초 계획이었던 1백28명보다 많은 2백44명을 노사자율로 줄였다. 대주주도 4.6대 1의 감자를 실시하고 자산매각 등을 하면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결국 올해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종업원의 일치단결이다. 회사가 어려우니만큼 고용이나 임금상황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워크아웃에서 졸업했지만 한때 영창악기도 노사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99년에는 인력구조조정에 반대한 노조 파업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경영진이 사무실을 공장으로 옮기고 종업원과 함께 생활하면서 노사신뢰를 다시 쌓았다. 이같은 노력으로 노사는 구조조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워크아웃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일동제약은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회사채를 사줘 운전자금으로 활용토록 하고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도 했다. 물론 외부여건도 무시할 수 없다. 업종의 경기가 회생에 중요한 변수이긴 하다. 우방 동아건설 등 퇴출기업중 건설업이 많았던 것은 이같은 외부여건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람의 힘이다. 채권단 대주주 노조 등 이해관계자 '3자'의 합심이야말로 성공의보증수표라는 얘기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