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의 경제읽기] '불가피한 연기금 주식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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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 주식투자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여야는 지난 4월 주식투자 허용을 긍정적으로 논의했으나 최근 연기금 부실을 우려해 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무시한 주장이다.
연기금중 가장 규모가 큰 국민연금을 보자.
앞으로 30년간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급속히 증가하기 때문에 다양한 투자대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연금 적용대상이 도시지역주민 모두에게로 확대됐다.
그 결과 매년 20조원의 보험료가 추가로 유입, 오는 2010년 적립기금 규모가 무려 2백49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올 연말 적립기금이 75조원이므로 향후 적립기금 성장률이 연평균 16%에 달하는 셈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자산운용 현황을 보면 운용자금의 77%가 채권에 몰려 있다.
반면 주식투자 비중은 7.5%에 불과하다.
그나마 투자대상 채권은 안전성을 강조한 나머지 국공채와 A등급 이상 채권으로만 한정돼 있다.
만일 현재와 같은 투자비율을 유지한다면 앞으로 채권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할 비중이 비현실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10년 국민연금 채권투자 규모는 전체 채권잔액의 2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연금이 독과점지위를 갖게 되면 국민경제에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뿐 아니라 국민연금 스스로도 수익성 높은 투자대상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국회가 주식투자를 반대한다면 눈덩이처럼 불어날 적립기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밝혀야 한다.
미국의 국민연금이 국채에만 투자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주장도 제도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오해다.
미국의 국민연금제도는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로부터 세금을 거둬 노년층에게 나누어주는 제도다.
따라서 매달 징수액과 지출액이 비슷해 적립기금은 극히 소액이다.
또한 적립기금도 수입과 지출의 시간적 불일치를 보완하는 예비비이기에 유동성이 큰 국채에만 투자한다.
이와 달리 우리 제도는 기본적으로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적립.운용한 후 원리금으로 노후를 보장해 주는 제도다.
따라서 채권에만 투자해 운용수익률이 낮아지면 보험료가 오르거나 급여가 줄어야 한다.
제도 차이를 볼 때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참고해야할 곳은 미국의 국민연금이 아니라 운용 수익률을 중시하는 민간 연기금이다.
물론 국민연금의 주식투자가 증가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수 있게 제도정비가 뒤따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금운용이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운용책임자의 임기를 보장하고 책임경영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연기금 주식투자가 증시부양책으로 악용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자본시장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국회가 진정으로 연기금 부실을 우려한다면 주식투자를 금지하는 것보다 시급한 과제가 있다.
당분간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급속히 증가하겠지만 2030년 이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2048년에는 고갈될 위험에 처해 있다.
보험료보다 급여수준을 높게 책정한 선심성 정책에다 인구 고령화 문제까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보험료를 올리거나 급여를 줄여야 하는데 표를 의식한 여야는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근본 문제는 제쳐 놓고 주식투자만 금지해 생색을 내려 하는 국회의 결정은 정치논리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 예다.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채권연구원 이사 rhee5@plaza.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