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姓)은 '좌(左)'씨이면서 평소 생각이나 말하는 것은 '우(右)'로만 가는 사람. 올해 국내 경제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대기업 규제 완화와 관련,재계의 입장을 앞장서 대변한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54)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좌(左)'원장은 "내가 '우(右)'씨 성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 '중(中)'씨 성을 가진 자식을 낳았으면 그런 소리들 안 할까…"라는 농담을 건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스스로를 '태생적인 자유주의자'로 평한다. 그의 고향인 제주도에선 부모와 아들 내외가 한 집에 살아도 한솥밥을 먹지 않을 정도로 '독립적'인 생활문화를 갖고 있다. 또 박사학위를 받은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의 경제학풍이 기업의 '자율'을 강조하기로 유명한 곳이라는 뿌듯한 학자적 자부심도 그를 자유주의자로 성숙시키는 데 크게 한몫했다. 그래서인지 좌 원장의 사무실 한 쪽 벽엔 '無爲自然(무위자연)'이라고 쓰인 큼지막한 액자가 걸려있다. 그는 "경제학은 '중용지도(中庸之道)'라는 도덕적 틀과 획일적 규범을 강요하는 공자님 말씀보다 자유분방함과 유연성,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자의 사상에 뿌리를 둬야 한다"며 나름의 철학관도 내비쳤다. 남으로부터 제약받는 것도,누구를 간섭하는 것도 질색이라는 좌 원장이 최근 '한국경제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A New Paradigm for Korea's Economic Development)'이라는 영문 저서를 발간했다. '정부의 통제에서 시장경제로(From Government Control to Market Economy)'라는 소제목이 의미하듯 이 책의 주요 메시지는 지난 30년간 한국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온 관치경제는 이제 시장에서의 경쟁시스템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것. 정부는 지금껏 망할 기업을 망하지 않게 보호하면서 기업을 키워 왔지만 앞으로는 기업끼리 시장에서 끊임없이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좌 원장은 "정부는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금융제도 법률 등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을 개선하고 관리하는데 힘써야 한다"며 "투자나 사업다각화 등 전략적인 판단은 기업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굳이 영어로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외국사람들의 몇 마디 말에 한국경제와 기업이 흔들려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한국경제를 30여년간 공부해온 사람으로서의 의무감이 발동했다는 것. 좌 원장은 내년 6월께 '한국 재벌 진화론(Evolution of Large Corporations in Korea)'이라는 두번째 영문저서를 낼 계획이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