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의 "매기(買氣)"가 성장주와 가치주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거시경제 지표들이 혼조세를 나타내면서 시장의 방향성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시장의 급등세를 이끌었던 IT(정보기술)주 등 경기민감주에 달라붙던 "사자"세가 점차 가치주 쪽으로 옮겨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세계 태평양 롯데삼강 롯데칠성 등 상당수 가치주들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면서 관심주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주 금융주 등을 지속적으로 사들이던 외국인도 가치주에 대한 매수세를 확산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하고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높은 상황이지만 경기회복을 담보할 수 있는 경제지표가 나오지 않는 한 시장은 혼조양상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했다. IT주를 필두로 한 성장주의 상승세가 둔화될 경우 실적 등 기업 내재가치가 우량한 가치주가 시장의 한축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특히 미국 기업의 4·4분기 실적예고가 이번주부터 본격화돼 향후 종목을 선별하는 '잣대'가 실적 등 기업가치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숨고르기에 들어갈 경우에 대비,저평가된 '가치주'를 선취매하는 것도 좋은 투자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둔화되는 성장주 상승세=3일 삼성전자는 오전 내내 프로그램 매도물량으로 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프로그램 매도세가 둔화된데다 외국인의 매수세가 활발해지면서 강세로 마감됐다. 삼성전기 삼성SDI LG전자 등도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SK텔레콤 한국통신 등 통신주는 벌써부터 조정 양상이 나타나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IT주에 대한 외국인의 순매수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매수 강도가 예전에 비해 둔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유택 세종증권 이사는 "지난 주말 미국의 3·4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면서 미국 증시가 혼조세를 나타냈다"며 "장중 일교차가 확대되는 등 투자심리가 불안해진데다 매수차익거래 잔고의 청산에 따른 프로그램 매물 압박 등을 고려하면 시장의 조정 양상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꿋꿋한 가치주=이날 롯데삼강은 전날보다 9.37%(6천원) 급등한 7만원에 마감되며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지난달 16일 이후 하루만 빼고 꾸준한 상승세다. 또 농심 신세계 현대백화점 대구백화점 등도 신고가를 경신하며 상승 추세를 이어갔다. 이밖에 가치주의 대표주자격인 태평양을 비롯 현대차 롯데제과 대림산업 등도 강세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이 '상승' 쪽으로 무게중심이 실릴 때는 가치주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소외되는 양상을 보이다가도 조정 양상이 나타날 듯하면 매기가 빠르게 가치주 쪽으로 옮겨 붙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황창중 LG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경기 민감주 가운데 덜 오른 종목에 매기가 쏠렸다"며 "이에 따라 경기방어 성격의 내수 우량 가치주들은 소외되기도 했지만 백화점주 등 소비 관련주를 중심으로 실적이 탄탄한 종목들은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평가된 가치주에 관심=홍성국 대우증권 투자정보부장은 "대부분 가치주들은 지난 4∼5월에 고점을 찍고 조정을 보이다가 9월부터 재차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최근 외국인들의 매기가 반도체 금융주에서 가치주로 꾸준히 분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부장은 "장중 등락이 커지는 유동성 장세 속에서 내년 이후를 겨냥한 후발 가치주를 선취매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며 삼양사 제일모직 세아제강 희성전선 한일시멘트 코오롱유화 제일제당 LG건설 제일약품 대웅제약 등을 제시했다. LG투자증권 황 팀장은 "지난 상반기와 달리 가치주가 중심축으로 자리잡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러나 지수가 조정받을 때마다 부각될 가능성이 높고 배당투자를 노린 매수세가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틈새시장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