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는 광복전 황해도나 충북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텃새였다. 농민들이 길조(吉鳥)로 여겨 해치지 않았던 탓인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느릅나무 팽나무 물푸레나무 소나무 등에 둥지를 틀고 번식했다. 소나무 위에 앉아 있는 황새가 '송단(松檀)의 황새'라고 해서 옛 그림이나 자수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나 황새가 군락을 이루면 마을에 만석꾼이나 큰 벼슬을 할 사람이 태어난다는 속설은 한국인과 황새의 관계를 짚어 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마지막 번식지였던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 무수동에 둥지를 틀고 있던 한 쌍 중 수컷이 71년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은 뒤부터 황새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무정란을 품어가며 살던 '마지막 텃새 과부황새'는 농약중독으로 83년 서울대공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은 뒤 94년까지 그곳에 살다 죽었다. 충북 청주시 미호천과 인근 논에서 최근 부부 황새와 새끼 등 일가족 3마리가 30년 만에 내륙에선 처음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러시아 아무르지역에서 겨울을 지내기 위해 온 것이라고 한다. 텃새화 가능성도 재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동서양을 통틀어 황새는 은둔자 행복 고귀 고결 장수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새였다. 서양에선 황새가 '효도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황새는 평생 짝을 보살필 뿐만 아니라 새끼 황새들은 늙고 병든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주고 큰 날개로 정성스레 보호한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자녀가 나이든 부모를 의무적으로 보살피도록 하는 법을 만들고 '황새법'이라고 이름 붙였다. 또 황새(stork)의 그리스어원인 스토르게(storge)라는 말은 '강한 혈육의 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국내엔 러시아 독일 등지에서 황새를 들여다 인공부화시켜 다시 텃새로 만들려는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가 있지만 농약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 처지로는 꿈같은 얘기다. 어찌됐든 한국의 천연기념물 199호이자 국제자연보존연맹 '사라져가는 동물' 26호인 희귀조 황새 일가족이 농약에 중독돼 죽거나 밀렵꾼들의 사냥감이 되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긴급 보호대책이 필요한 때다. 고광직 논설위원 kj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