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한 사내가 달려오는 전철에 뛰어들어 오른팔을 잃는다. 결근은 커녕 지각도 한번 없는 성실한 회사원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직장인의 일상에서 탈출하려는 충동의 순간이 "소리"(이유범)에서 그렇게 그려진다. "구평목씨의 바퀴벌레"(이승우)에는 책상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바퀴벌레에 집착하는 회사원이 등장한다. 그는 바퀴벌레를 검은 정복의 괴물로 여기고,그 괴물이야말로 꿈도 이상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고달픈 월급쟁이로서의 자신과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결국 그는 사표를 던지고 만다. 우리의 소설들은 현대 샐러리맨들의 엽기스러운 병적 징후에만 지나치게 매달려 있는 것일까. 하기는 소설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화려함의 그늘에서 쓸쓸히 시들어가는 삶들을 조명함으로써 시대의 모순을 깨우쳐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니까 당연한 성찰이랄 수도 있겠다. 한데 이런 샐러리맨은 어떨까? "가야를 찾아서"(김종성)에는 사학과를 졸업하고 광고 회사 차장으로 근무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는 스스로를 닳고닳은 구두 뒤창처럼 일상성 속에 매몰된 월급쟁이라 생각하지만,그 삶 속에서 언제나 고대사에 대한 꿈과 열정을 유지한다. 그는 이를테면 내면에 "영원한 이상"을 품은 샐러리맨이라 할 수 있다. "낮은 언덕 위"(문영심)의 주부 사서 윤지숙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녀는 새로 전근해 간 도서관에서 전임자가 벌였다가 실패한 주부독서회를 부활시킨다. 칭송과 함께 질시도 따르지만 자신의 직업 속에서 출세 이상의 뜻깊은 일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예가 된다. 출세의 논리에 매몰될 것인가,조직 속에서 자기도 위하고 남도 위하는 또다른 보람을 찾으려 애쓰며 지낼 것인가. 샐러리맨의 지혜로운 모습을 우리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