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내일 다시 얘기해야겠다" 서울 K고 김모 교사는 긴 한숨과 함께 P군을 교실로 돌려보냈다. 2시간 이상 계산기와 사설학원의 배치기준표 등을 놓고 지원가능학과를 찾아봤지만 속시원한 답을 찾진 못했다. P군의 경우 많은 학생이 몰려 있는 중위권 성적인데다 특별히 뛰어난 과목 없이 밋밋한 성적분포를 보였기 때문이다. 김모 교사는 "올해는 믿고 기댈만한 자료가 부족해 진학상담에 큰 애로를 겪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특히 2백50점에서 3백20점 사이의 중위권 학생을 지도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교 진학상담실이 짙은 안개속을 헤매고 있다. 그 어느 해보다 입시요강이 다양한데다 총점 석차조차 공개되지 않아 '감(感)'에 의존한 진로지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 따로 계산해야 하는 성적만 20가지 =경영학과를 지망하는 P군이 이번 수능에서 받은 총점(원점수)은 2백95점. 우선 서울소재 대학을 살펴보기 위해 자신이 받은 점수를 여러가지 경우로 나눠 계산했다. 언어 수리 과탐 외국어성적을 합해 2백50점, 언어 수리 외국어를 더해 보니 2백점에 조금 모자랐다. 여기에 원점수와 변환표준점수별로 따로 환산하는 등 각 대학의 전형에 맞게 점수를 다듬다 보니 '경우의 수'만 10여가지가 됐다. 계산한 결과를 토대로 사설입시기관과 학교가 자체 제작한 배치기준표상의 대학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합격 가능성을 타진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성적이 조금 모자란 듯 싶다. 비슷한 점수대에 몰려 있는 학생이 6만명을 넘어선다는 사설입시기관의 총점 석차 추정치도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5개 영역의 수능성적 가운데 하나라도 두드러지면 가능한 곳이 있을텐데…". 과목별로 평탄한 성적분포를 보인 점이 부담돼 결국 지망학과를 '불문(不問)'으로 돌리고 지망대학도 수도권으로 넓혔다. 이번엔 요구조건이 까다로운 몇개 대학이 추가돼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고 '경우의 수'는 결국 20가지로 늘어났다. 대학마다 다른 학생부성적 산출방식도 골칫거리였다. 어느새 상담시간이 2시간을 넘어섰고 머리가 무거워진 P군은 다음날 다시 찾아오겠다며 진학상담실 문을 나섰다. ◇ "전 재수할래요" =5일부터 최종 진학상담을 시작한 J여고의 정모 교사는 다짜고짜 재수 하겠다는 C양의 전화를 받고 진땀을 흘렸다. 2백50점대의 성적을 거둔 C양은 이날 학교에서 입시상담을 받기로 약속돼 있었으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모 교사는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겠다는 아이들이 올들어 유독 늘어난 것 같다"며 "여학생들의 경우 남학생보다 수능점수 폭락에 대한 충격이 커 충분히 진학이 가능한 학생들도 남녀공학보다는 여대를 선호하거나 극심한 하향지원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총점 기준으로 2백점 미만의 성적대에 있는 학생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영등포고의 한 3학년 교사는 "한반에 2백점 미만 학생이 15명 정도씩은 있는데 이들에게는 진학상담보다 우선 충격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