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앞바다 '선유도'의 겨울] 하늘은 날더러 노을이 되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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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섬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휘달리는 칼바람이 부담스럽다.
섬은 그러나 '겨울맛'이 각별하다.
앞으로만 내딛던 걸음을 멈추고, 그 방향과 속도를 차분히 짚어 볼 수 있는 혼자만의 무대를 내준다.
짜여진 뱃시간에 갇힌 공간은 되레 해방감을 더해 마음의 빗장을 풀게 만든다.
깊어가는 겨울, 또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
섬을 찾는다.
군산 앞바다의 선유도다.
고군산군도 20여개 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군산내항에서 2시간 거리다.
여객선은 야미도 신시도를 거쳐 바로 옆 선유도 선착장에 닿는다.
길은 두 갈래.
높고 긴 다리로 연결된 무녀도와 선유도 진말쪽으로 시멘트 포장길이 닦여 있다.
대여 자전거 세움대를 뒤로 하고 진말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오른편으로 2개의 발가벗은 바위산이 보인다.
망주봉이다.
임진왜란때 망루역할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의 승리를 보고하기 위한 장계를 이 섬에서 초안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유배된 신하가 봉우리에 올라 한양의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얘기에 마음이 쏠린다.
진말과 망주봉쪽 섬을 연결해 주는 명사십리해수욕장 전경이 후련하다.
여름철이면 피서 1번지로 꼽히는 이유를 알겠다.
중년의 단체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해변의 정취를 즐긴다.
느릿한 걸음에, 고개숙인 모습에서 각자의 내면을 향한 진지한 시선을 느낀다.
선유8경의 하나인 선유낙조를 보기 위해 선유봉 중턱에 자리한다.
선유도와 장자도를 이어주는 장자교를 건너기 전이다.
장자교 위 자전거데이트족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장자도 왼쪽끝에서 비껴내린 발간 해가 관리도 허리춤으로 떨어지면서 온 세상은 어둠속에 파묻힌다.
손가락으로 꼽을수 있을 만큼 적은 마을의 불빛 위로 하얀달이 무대위 조명처럼 빛난다.
이튿날 다시 장자교를 건넌다.
윤찬수씨가 모아 놓은 2천여점의 수석과 분재를 구경할수 있는 대장도 앞에서 본 명사십리해수욕장쪽 바다가 낮은 산줄기로 둘러싸인 잔잔한 호수 같다.
반대편 갯바위의 한 낚시꾼은 아직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다시 선유도 선착장.
밤새 물이 빠진 선착장 부근은 큰 강의 삼각주를 연상시킨다.
굴따기작업을 하는 마을주민 틈으로 관광객들이 뛰어든다.
살이 탱탱한 굴을 연신 집어들며 환호성을 터뜨린다.
반대편 무녀도쪽 긴 뻘에도 주민들이 허리를 굽히고 있다.
바지락을 캐는 것이라고 한다.
보일듯 말듯한 움직임만 시선에 잡힐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비현실의 공간에 들어선듯 또다시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선유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