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자르고 협력업체를 윽박질러서 이익을 내는 것은 재건이 아니다. 자산을 내다팔고 직원들을 쥐어짜면서 장부 수치를 바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만년 적자 닛산자동차의 경영 호전에 일본 언론의 시선이 꽂히기 시작한 2000년 여름. 일본 재계의 한 원로는 닛산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종업원과 협력업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얻은 성과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이었다. 비판의 과녁은 그러나 엄밀히 말해 닛산자동차가 아니었다. 화살은 브라질 출생의 프랑스인으로 닛산의 재건 핸들을 잡고 있는 카를로스 곤 사장(47)을 향해 날아간 것이었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 일본 언론은 '닛산의 진정한 부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곤 사장의 장담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실현 가능성에 의문 부호를 달면서도 그의 말 한마디,행동 하나를 놓치지 않으며 닛산의 운행 궤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지난 3월 닛산자동차는 마침내 화려한 부활을 선언했다. 적자와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며 1년전 6천8백43억엔에 달했던 붉은 숫자가 올해는 3천3백10억엔의 검은 글자로 바뀌었다고 공개했다. 일본 언론은 경악했다. 닛산에는 화려한 조명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1조엔대의 수지개선 비밀을 캐기 위해 기업들은 닛산 연구에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었다. 이달 초 일본 언론과 재계는 또 한번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과 CNN이 공동 선정한 '2001 글로벌 비즈니스 파워 25인'에서 곤 사장이 1위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코스트 커터'(Cost Cutter:원가삭감기계) '재건 청부업자' 프랑스 르노자동차 부사장에서 99년 6월 닛산으로 옮겨온 그에게는 거친 이미지의 닉 네임이 따라 다닌다. 취임 초기에는 '점령군' '도살자'라는 험악한 소리를 듣기도 했다. 닛산이 르노에 36.8%의 지분을 내준 데다 파산직전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닛산 리바이벌 플랜(NRP)'을 진두지휘하면서 직원과 협력업체들에 상당한 희생을 요구한 탓이다. 종신고용, 연공서열의 노사문화가 뿌리깊은 일본적 기업 풍토에서 그의 수술은 언론과 재계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방법에 대한 평가는 엇갈려도 일본재계는 중환자 닛산을 건강 체질로 회복시킨 곤 사장의 수술 솜씨에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일궈낸 수치상의 변화는 '혁명'에 가깝다. 취임 전인 99년 3월말 1조4천억엔을 헤아렸던 부채는 그가 운전대에 앉은 2년동안 8천40억엔으로 6천억엔이 줄었다. 50%를 간신히 넘겼던 공장 가동률은 75%를 넘나들고 있다. 구매 코스트는 2003년까지 20% 삭감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계획을 훨씬 웃도는 스피드로 줄여가고 있어 추가 달성도 무난할 전망이다. 직원을 14만8천명에서 12만8천1백명으로 줄이고 판매거점을 대량 폐쇄(3백35개)하는 아픔이 따르긴 했지만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에 허덕이는 시점에서 올린 성과임을 감안하면 기적으로 불리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환자실에 누운 닛산(곤 사장의 표현)을 수술하면서 그가 제일 처음 투여한 약은 '분위기 쇄신'과 '낡은 관행 깨부수기'였다. 닛산은 회사가 가라앉으면서도 사무실과 생산 현장에 위기 의식이 메말라 있었다. 곤 사장은 젊은 사원들로 구성된 개혁전담팀(CFT)을 설치하고 각 부서의 인재들을 모아 도려낼 환부를 압축했다. 환부는 R&D(연구개발)에서 시장개척,인재 육성등 9가지 부문에 걸쳐 골고루 망라됐다. 그는 영업의 경우 2천7백여 판매점을 젊은 직원들에게 사진 촬영해 오도록 지시하고 도로 폐쇄, 주변 상권 변화 등으로 제 기능을 못하게 된 판매점을 모조리 폐쇄하거나 재배치시켰다. 물류개선 활동을 통해 그동안 육로로 완성차를 운송해 왔던 도쿄~오사카 간의 수송 방식을 해상으로 단숨에 바꿔 버렸다. 직원들에게는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주면서 한편으로는 이들의 아이디어와 건의를 수용한데 따른 일련의 변화다. 곤 사장은 따라서 회사 전 부문에 걸친 작은 수술이 모여 닛산 부활을 이끌어 낸 것이지 특정 부문의 개혁이 전체를 살린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외부에 알려진 공장매각, 종업원 해고, 구매 코스트 삭감은 수술 과정에서의 한 처방이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닛산 리바이벌 플랜에 머물지 않고 내친 김에 일본 최우량기업으로까지 내닫겠다는 청사진을 지난 10월 제시했다. 2005년까지는 해외 판매대수 1백만대, 영업이익률 8%, 유이자부채 0(제로)를 달성하겠다는 '플랜 180'의 목표에 다시 과감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일본 언론은 그러나 '곤 혁명'의 앞길에 세가지 걸림돌이 남아 있다며 이를 뛰어 넘어야 닛산이 진정한 신화 창조에 성공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언론은 "개혁은 성공했다지만 판매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한다"며 "팔리는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후쿠가와 신지 덴쓰종합연구소 고문 역시 "닛산의 향후 과제는 팔리는 자동차를 내놓는데 있다면서 시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언론과 재계의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곤 사장의 닛산 신화는 대다수 일본인들로부터 후한 점수와 갈채를 받고 있다.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가 최근 실시한 기업 이미지 조사에서 닛산은 종합점수가 작년 1백35위에서 올해 34위로 대약진, 조사 대상 회사들중 이미지가 가장 눈부시게 좋아졌다. 특히 자기혁신 능력에서 20위, 인재육성에서 25위로 꼽혀 변화에 더딘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내고 미래지향적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곤혁명의 열매중 하나가 이미지 급상승으로 나타났음을 보여 준 셈이다. 사원들의 잠재 능력을 어떻게 발휘시키느냐가 자신의 숙제라고 말하는 그는 지난 10월 자신의 거취와 후임에 관해서도 언급, 주목을 끌었다. 르노의 차기 최고경영자로도 유력시되고 있는 그는 '플랜180'이 끝나는 2005년까지 닛산과 같은 배를 탈 것이라고 밝혀 변화의 페달을 앞으로 더 세게 밟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또 자신의 후임은 일본인 임원이 될 확률이 높다고 언급한 후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리더십과 경영능력을 가진 사람을 후임자로 고르고 싶다고 말했다. "모든 개혁의 열쇠는 실행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 일본에도 훌륭한 비즈니스 리더는 많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플랜을 짜도 성과가 나오지 않고 실천을 미적댄다면 그 리더는 신뢰받지 못한다" 그는 자신과 일본 경영자들의 차이가 실천의지에 있다고 말해 리더의 마음가짐 하나가 기업의 운명을 1백80도로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 ----------------------------------------------------------------- [ 약력 ] * 1954년 브라질 출생 * 레바논에서 중학교 재학중 프랑스로 이주 * 1974년 프랑스 국립이공과학대학 입학 * 1978년 프랑스 국립고등광업학교 졸업, 미쉬린 입사 * 1985년 브라질 미쉬린 사장 * 1989년 북미 미쉬린 사장 * 1996년 프랑스 르노 부사장 * 1999년 6월 일본 닛산자동차 최고집행책임자(COO) * 2000년 6월 닛산자동차 총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