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중국으로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결코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더군다나 중국인들의 '장사 솜씨'는 유태인을 빰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지에서 뛰는 국내 기업인들은 중국인들의 황당한 요구와 교묘한 상술 때문에 여러가지로 애를 먹는다고 한다. 중국의 서북쪽 오지 신강성(新疆省)에서 굴삭기 영업을 하고 있는 안문배 대우종합기계 신장기계 법인장. 지난해 1월 부임한 안 법인장이 그동안 굴삭기를 파는 과정에서 얻은 중국 세일즈의 '비법'과 에피소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한국경제신문에 보내 왔다. ◇ 백주 24컵과 1억3천만원 =중국 신장성 남쪽에 카시라는 도시가 있다. 한 건설업자가 굴삭기를 구입하려 한다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집중 공략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브랜드 인지도에서 미국이나 일본 업체에 밀리는 때문인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우리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 업체와 계약하기로 했다. 고객 하나가 눈 앞에서 날아가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다음 번에는 대우종합기계의 굴삭기를 사도록 인연을 맺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업체와 계약하는 바로 그날 그 건설업자를 점심에 초대했다. "비록 이번에는 안 사줬지만 친구 사이가 됐으니 다음에는 꼭 우리 굴삭기를 선택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는 "여러 번 찾아주었는데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술잔을 건넸다. 중국 전체가 그런지, 신장만의 특이한 문화인지 몰라도 이 곳 술문화는 독특하다. 맥주컵 3개에 40도가 넘는 백주를 가득 따라 한꺼번에 마셔야만 진정한 친구로 인정해준다. 상대방은 경리직원과 설비과장, 기사 등을 포함해 모두 7명이 나왔으나 우리쪽은 영업사원과 나 2명뿐이었다. 3컵씩 한 순배 돌아 21컵을 마시고 난 뒤 그는 3컵을 더 따라 주었다. 이미 주량을 오버한 터라 "내 이것을 마시면 이 자리에서 죽을 것 같다"며 솔직히 말하고 정중히 거절했으나 "죽으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왔다. 연거푸 3컵을 들이킨 뒤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모두 24컵을 마신 것이었다.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쓰러져 24시간 만인 다음날 오후 2시에 깨어났다. 호텔방이었다. 눈을 뜨니 그 고객은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정말 외국인을 죽일 뻔했다"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당신을 호텔에 옮기고 호텔 직원에게 한시간마다 한번씩 확인시켰는데 이렇게 깨어나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리고 침상에 놓여 있던 가방 두개를 내 품에 덥썩 안겨 주었다. 열어보니 80만위안(약 1억3천만원)에 달하는 현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는 "미국 업체와의 계약을 취소하고 대우 굴삭기를 구입키로 결정했다"며 도리어 나에게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는 그 뒤 3대를 더 구입해 줬다. 사막에서 몸도 팔고 굴삭기도 판 셈이었다. ◇ 양 1만마리 VS 굴삭기 한대 =신장성은 옛 소련에서 독립한 7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당연히 변방무역이 성행한다. 신장성은 중국에서는 오지에 속하지만 주변국들은 신장성을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할 정도로 못사는 나라들이다. 지난해 여름, 이웃나라 키르기스스탄에서 손님이 한 사람 찾아왔다. "현금이 없다"며 "굴삭기 값(10만달러)으로 양 1만마리를 줄테니 구상무역을 하자"고 불쑥 제의했다. 한참 생각했다. 1만마리를 처분할 수 있으면…. 틀림없이 남는 장사인 것 같은데.카우보이가 돼 3천㎞가 넘는 곳에서 이 곳까지 통관해 몰고 오기도 그렇고, 현지에 가공공장도 없어 고기로 갖고 오기는 더욱 어렵고….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만 가져갈 수 있다면 냄새 안나는 양고기를 우리 국민들에게 실컷 맛보일 수 있을텐데…"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포기했다. 안타까웠다. ◇ 악성 고객 다루는 법 =고객마다 천차만별이다. 품질을 트집잡고,할부 잔금을 일부러 안내는 악성 고객도 적지 않다. 한 고객은 애프터서비스를 잘해 주는데도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할부기간이 5개월이나 지나도록 마지막 3개월치 할부금을 납입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런 저런 핑계만 둘러댔다. 이런 고객이 제일 상대하기 어렵고 스트레스도 많이 준다. 그를 저녁식사에 초청했다.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도 계속 돈이 없다고 버텼다. 그때 스치는 아이디어 하나. 그가 애주가라는 것. 작전을 바꿨다. 술을 잔뜩 먹이고 속된 말로 코가 비뚤어질 때를 기다렸다.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미리 준비해간 '할부금을 지불하겠다'는 약정서에 그의 사인을 받아냈다. 그때가 새벽 3시30분. 칼자루가 내 손으로 넘어왔다. 다음날 그 지역 경찰부국장을 데리고 그 고객을 방문했다. 예전처럼 품질을 트집잡는 등 갖은 핑계를 대며 지불을 거절했다. 때를 놓칠세라 '그동안 기계에 아무 이상이 없었고, 개인 사정으로 잔금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즉시 지불한다'는 내용이 담긴 전날 저녁의 약정서를 내놓자 안색이 확 바뀌었다. "오늘 당장 지급 안하면 경찰국으로 이송하겠다"는 경찰부국장의 으름장까지 곁들여지자 그는 말없이 뒤돌아 서서 금고에서 현금을 꺼내 놓았다. 수금방법이 엉뚱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피 같은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 고객은 그때부터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두번째 굴삭기를 살 때는 전액 현금으로 지불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