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자선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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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눈 먼 거지가 앉아 있는 길 모퉁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한 사람은 동전을 꺼내 주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못본척하며 지나쳤다.
그 때 사신(死神)이 나타나 말했다.
"자선을 한 사람은 앞으로 오랫동안 살테지만 그냥 지나친 사람은 곧 죽게 될 것이다" 동전을 주지 않은 사람이 다시 돌아가 자선을 베풀려하자 사신은 그를 말리며 말했다.
"바다에 나설 때 배 밑창에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를 바다에 나선 후에 살펴보겠는가"
유태인의 성서 해설서 '미드라시'에 나오는 자선을 강조하는 얘기다.
인간심성에 바탕을 둔 자선이 도덕적 선(사랑)을 지향하는 영혼의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유태인들의 생각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런 사고는 기독교 윤리의 바탕이 돼 '이웃사랑'으로 발전해 왔다.
세밑이면 으레 등장하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 럭키해안에는 1천여명의 난민들이 상륙해 들끓었다.
배가 좌초돼 생긴 난민들이었다.
이들을 도울 묘책을 궁리하던 구세군 여사관 조셉 맥피는 옛날 영국에서 빈민을 돕기위해 무쇠솥을 내걸고 모금하던 방법을 떠올렸다.
오클랜드 부두에다 큰 솥을 내다 걸었다.
그 위에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붙였다.
그는 난민에게 성탄절날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기금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오늘날 1백7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자선냄비'의 기원이다.
1865년 영국에서 부스가 창설한 구세군은 1908년 호가트 사관이 한국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구세군 사령관 조셉 비아(박준섭)사관이 서울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모금을 시작 했다.
딸랑딸랑 종소리에 실어 이웃사랑을 외치기 시작한 것도 72주년이 된다.
하지만 은행과 함께 '2천원 사랑'자동이체 캠페인을 벌이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도 모금을 하는 등 모금방법의 변화를 보면 아무래도 자선냄비가 특성을 잃어가는 듯 싶어 아쉽기만 하다.
인정이 자꾸 메말라 가는 탓일까.
고광직 논설위원 kj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