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그림' 서울 신사동 예화랑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서양화가 장승택(43)의 그림은 색과 빛만 보여주는 전형적인 미니멀리즘 작품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만든 플렉시글라스(일종의 합성수지)라는 반투명 재질이 캔버스를 대신하고 화면에는 약간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한 색상을 띠고 있다. 또 작품을 조명하는 빛에 의해 작품의 깊이가 형성되고 있을 뿐이다. 관람객들은 형태가 없는 화면에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을만한 단서를 찾기가 어렵다. 그의 그림은 '당신이 보는 것이 있는 그대로'라는 스텔라의 말처럼 극소수 전문적 관객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굳이 알 필요는 없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의 화면은 색과 빛이 어우러져 은은함과 깊이를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홍익대와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10년 이상 전통 재료를 거부하며 실험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다. 장씨는 수지 파라핀에 이어 플렉시글라스 작업을 몇년 째 해오고 있다. 그가 선택한 재료는 중성적인 매체로 반투명성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플렉시글라스에 오일을 수차례에 걸쳐 롤러로 밀어 완성하는 작업을 그는 '폴리 페인팅(Poly Painting)'으로 부른다. 중층(重層)화면이라는 뜻인 듯 하다. 2년전 카이스갤러리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작업과 비슷하지만 이번 개인전은 그 때와 기법상에 차이를 뒀다. "이번 전시에서는 색면 위주였던 그때와 달리 모노크롬에 기하학적인 형상을 가미했습니다. 색의 깊이도 훨씬 강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플렉시글라스를 박스형태로 처리해서인지 이번 신작들은 정면이 아닌 옆에서 봐도 빛이 순환하는 느낌을 준다. 이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질료와 빛이 이루는 미적 충동을 살며시 던져준다. 29일까지.(02)542-5543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