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벤처는 머니게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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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군자동에서 대형 스크린을 생산하는 한 벤처기업은 최근 스크린 대량생산에 들어가는 자금을 마련하려고 벤처캐피털(창투사)과 접촉했다.
기술력 준비를 마치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회사측은 국내 유수의 대기업과 신제품 개발과 관련한 MOU(양해각서)도 맺었던 터라 자금유치가 쉬울 줄 알았다.
그러나 벤처캐피털은 의외의 조건부터 먼저 따져왔다.
"당장 매출이 일어나는 제품이 있느냐,1년 이내에 코스닥 등록이 가능하냐" 등등.
종자돈이 필요했던 이 업체로선 도저히 시원스런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물음들이었다.
이 회사 임원은 "벤처캐피털이 그런데인 줄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벤처캐피털에서 근무하다 최근 인터넷게임 업체 이사로 옮긴 김태진씨(39).그는 오자마자 25억원 규모의 자금을 끌어오는 일을 하고 있다.
벤처캐피털들은 문화콘텐츠 투자붐을 의식해서인지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하지만 그는 요즘 벤처캐피털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입장을 바꿔보니 그들은 투자배수를 후려치고 언제 현금화할 수 있을지에만 급급해 했다.
투자받는게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는 씁쓰레 했다.
요즘 상당수 벤처기업들이 이들과 유사한 사례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일부 벤처캐피털들은 투자하기에 앞서 투자회수부터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털들은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지만,문제는 투자기간이다.
단기간에 몇배로 '튀길 수 있는' 투자만 찾고 다닌다.
그러면서 그들은 벤처캐피털 지원제도가 부족하다며 앓는 소리를 하고 있다.
물론 일선 심사역들의 고충도 알 만하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실업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벤처기업을 파트너로 보는 투자행태는 아직 정착되지 못한 것 같다.
파트너라는 인식이 있으면 단기 투자성과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벤처캐피털들은 혹시 벤처기업을 머니게임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일이다.
이성태 벤처중기부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