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혈세로 죽어가는 금융사들을 살려준 이유가 뭡니까.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라는 뜻 아닙니까. 금융사들이 기업대출은 외면한 채 "돈 되는" 개인대출에만 매달린다면 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어디서 조달합니까"(C은행 P임원) 은행원 경력 23년째인 그는 요즘처럼 자신의 직업에 자괴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뱅커로서의 인생은 끝난게 아니냐는 푸념을 쏟아냈다. 그는 "은행은 이제 수익성을 쫓는 금융사일 뿐 공공성을 중시하는 금융기관은 더이상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의 지적처럼 은행들은 개인들에게 수백만원의 돈을 높은 금리에 빌려 주는 이른바 "소비자금융"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신한금융지주회사는 프랑스계 금융그룹인 BNP파라바와 합작으로 소비자금융전문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한미 국민 제일은행 등도 최근들어 고리(高利)소액대출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은행권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응,신용금고들은 잇따라 소액대출상품의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이들 금고의 대출금리는 연 60%까지 치솟고 있다. 제도권 금융사로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자연히 고객 입장에선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 사상초유의 저금리 시대속에 벌어지는 금융권의 이같은 경쟁양상은 금융시장에 몇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선 기업의 주된 자금조달 창구로서 금융사 역할이 무뎌지고 있다. 특히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이른바 신용대란의 주역이라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10월말 현재 신용불량자수는 한달새 7만6천명이나 증가한 2백81만명에 달했다. 이는 올 3분기(6월~9월)사이 늘어난 8천명보다 10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처럼 금융사들의 경쟁적인 소액대출영업은 개인들의 무분별한 차입을 부추길 수 있다. 이는 또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불행히 한국의 금융사들은 크레딧뷰로(CB)와 같은 정확한 개인신용평가를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사들이 경쟁적으로 소비자금융영업에 매달린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최철규 금융부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