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98년 초 정치자금과 관련, 기발한 제안을 했다. 기업들로부터 연간 납부세액의 1%를 걷어 정당에 정치자금으로 배분하는 내용을 정치자금법에 담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상은 법인세 납부 규모가 3억원이 넘는 대기업. 이 제도를 도입하면 기업당 정치자금 부담은 오히려 연평균 5백만원 가량 줄어들 것이란 게 선관위측의 계산이었다. 당시 '법인세 1% 정치자금 지원안'을 실무검토했던 원병설 선관위 정당과장은 "대기업들은 법인세의 1%만 내면 정치자금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정치권도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도입을 추진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선관위측의 이같은 발상은 정치권은 물론 재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현실화에 실패했다. "법인세 1%를 정치자금으로 내더라도 선거가 시작되면 음성적 지원이 불가피한 현실을 감안할 때 결국 기업들은 이중부담을 안게 된다"는게 그 이유였다. 선관위는 지난 5월 수정안을 제시했다. 골자는 법인세 1% 이외의 정치자금을 요구하는 정치인은 피선거권을 박탈하겠다는 것.법안 수정작업을 담당했던 정치자금과 이재평 서기관은 "피선거권 박탈이란 강제규정 때문에 기업의 폭로가 무서워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요구하는 사례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이 안은 야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료실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다. 정치자금 문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려 했던 선관위의 정치실험은 '한국적 정치현실'이란 높다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법인세 1%안'은 분명 한국적인 발상이다. 그나마 근접한 외국사례로는 미국의 체크오프(Check-off) 제도를 꼽을 수 있다. 연말에 소득세 신고서를 작성하면서 3달러를 정치자금으로 헌납할지 여부를 체크하는 제도다. 미국정부는 이 돈을 모아 정당에 배분한다. 하지만 모금 방법이 '자발적'이라는 점에서 '강제염출방식'인 우리와는 다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