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몸을 팔까. 한국의 근현대사는 신고간난(辛苦艱難)의 세월이었으되 그 고통을 감당하기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몇 배 더하였으리라.실로 전쟁과 가난과 억압의 세월 속에서 가족의 울타리에서 떨어져 나와 웃음을 팔고 몸을 떼어 파는 인생으로 전락한 여성이 한 둘이었던가. 한국의 소설들은 그 기구한 여인의 운명을 놓치지 않고 "성의 상품화"라는 그 전형적 현상을 담아내고 있다. 이광수의 "무정"(1917)은 흔히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여기에 가련한 여주인공의 형상이 자리잡고 있으니 그 이름 박영채이다. 어느 날 그녀가 경성학교 영어선생인 이형식을 찾아온다. 그녀는 형식의 옛 은사 박응진의 여식.아버지가 중죄인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죽어버린 후 그녀는 권번에 팔려 하루아침에 기생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어릴 적 아버지 밑에서 열녀전을 배운 탓에 그녀에게는 몸을 판다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다. 아버지가 정해준 배필인 형식을 생각하며 몸을 보존해온 그녀는 그만 몸을 더럽히는 흉사를 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이는 전락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정조의식이라는 강력한 관념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정조의 파괴에 조선의 파멸이라는 운명이 투영되어 있음이 아닌가. 황순원 소설 '별과 같이 살다'(1950)의 곰녀는 영채와는 다른 소작민의 딸로 몸을 파는 창녀의 신분으로 전락해 가는 여성이다. 이름이 곰녀라 함은 단군신화의 웅녀를 표상함이니 그 인생 유전의 기록에는 곧 우리 민족 수난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지주의 집에 들어가 몸을 더럽히고 서울에 공장이 있다는 말에 무작정 상경하여 평양 유곽으로 팔려나가는 신세가 되는 곰녀는,그럼에도 타고난 천성 그대로 상황에 순응하면서도 착한 심성을 잃지 않는 여인이다. 해방을 맞아 병든 그녀도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는 이 작품의 결말은 성의 상품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여인의 가련한 형상을 보여준다. 해방 후 웃음과 몸을 파는 여인들의 이미지는 민족적 수난을 상징하는 데서 나아가 보다 구체적인 타락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채만식의 '낙조'(1948)에 나오는 춘자는 친척 선생을 사랑했지만 양공주로 변해 이민족의 아이를 뱄다. 또 이범선의 '오발탄'(1959)에 등장하는 명숙도 가난을 이기지 못해 미군 병사의 농락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해방이라는 역사적 전환에도 불구하고 몸을 떼어 팔아야 하는 여성들의 고통은 이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어버린 것이다. 1960∼70년대 급속적인 산업화 시대의 그늘에서 '성'을 도구로 일상을 유지하는 여성들의 등장은 두드러진다. '호스티스 문학'이라는 유행어까지 낳게 했던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을 필두로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미스 양의 모험'등이 무한 소비도시의 향락적인 주점거리에서 활약하는 호스티스들의 매춘 과정을 담고 있는 1970년대 소설이다. 이러한 현실의 중압이 극히 서정적인 색채를 띠고 나타난 작품이 바로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1973)이다. 여기에는 술집 작부 생활이 지겨워 고향을 찾아 도망쳐 나온 '백화(白花)'의 몸은 팔되 마음은 순백인 고백이 펼쳐진다. 이런 형상은 공선옥의 '목마른 계절'(1993)에 등장하는 카페 여인 현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다. 이들은 모두 육체적,신분상의 타락과 전락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순결을 지킨다. 이러한 상황이 보다 복합적인 양상으로 변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라고나 할까. 일례로 전경린의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2001)의 여주인공 은령은 평범한 중산층 남자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낯선 도시로 나가 구성작가로 살아간다. 그녀에게 두 남자(젊은 시인과 술집 사장)가 생긴다. 은령은 그 둘 사이를 오가는 삶을 살아가는데 더 흥미로운 것은 후자쪽이다. 그녀는 돈을 받고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현실이 강제하는 성의 상품화가 아니라 고독을 견디기 위한 상품화라고나 할까. 이와 같은 여주인공의 모습은 성의 상품화가 술집과 창녀촌에 국한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여러가지 방식으로 특화되어 가는 199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여성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방민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