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골프 뒷얘기]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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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에게 "브레이크"가 걸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70년대 한창 골프실력이 절정에 도달해 있을 때 "입스"(yips)라는 "골프병"이 찾아온 것이다.
입스는 짧은거리의 퍼팅때 몸이 굳어져 스트로크를 제대로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 회장은 당시 한 골프대회에 나갔는데 핸디캡이 5∼6 정도 되는 선수와 준준결승전에서 맞붙게 됐다.
매치플레이로 경기가 열렸는데 이 회장은 17번홀에서 짧은 거리의 퍼팅이 들어가면 무승부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거의 '기브'(OK) 거리였지만 상대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는 수 없이 퍼팅을 했는데 볼은 들어갈 듯하더니 홀을 돌아나와버렸다.
물론 이 회장이 패했다.
그는 그날 밤 너무 분해서 잠을 못이뤘다고 한다.
다음날 이 회장은 퍼팅감을 잃어버려 1번홀부터 8번홀까지 계속 3퍼팅을 했다.
그만 포기하려고 했으나 친구들이 "쩨쩨하게 그룹 총수가 뭐 그러냐"고 하는 바람에 고통속에서 나머지 경기를 마쳤다.
이 사건 뒤로 이 회장은 퍼팅만 하려고 하면 팔목이 굳어지면서 '잘 안되면 어쩌지'하는 조급증이 났다.
이 증세는 근 20년간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나곤 했다.
이 회장은 이후 볼이 그린에 올라가면 '딱 한 번만 퍼팅'을 하고 볼을 집어들었다.
확신을 가지고 시도한 퍼팅이 실패했을 경우 실망감으로 그날의 라운드를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회장은 친구들과 라운드하면서 '원 퍼팅'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입스로 고생하고 있던 이 회장은 언제인가부터 편안하게 즐긴다는 마음으로 라운드를 하면서 거짓말처럼 입스가 없어졌다고 한다.
퍼터도 긴 걸로 바꿔 부담을 덜면서 끝까지 홀아웃하고 있다.
5∼6년 전부터 이 회장과 주말마다 골프를 즐겨온 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는 "한때 입스 때문에 고생했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그런 현상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골프용품의 국산화에도 애쓰고 있다.
지난 89년 '엘로드(elord)'라는 골프용품 회사를 설립,외제가 판치는 국내 골프용품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가 골프용품에 손을 대기로 결심한 것은 한 골프대회에서 일본제 양말과 장갑을 기념품으로 받고부터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 양말 쪼가리까지 일제를 쓰다니…"
평소부터 외제 수입품이 국내 골프용품시장을 휩쓸고 있는 데 자존심이 몹시 상해있던 이 회장은 5년 정도 적자 볼 생각을 하고 국산 골프용품 제작에 나섰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