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과학자] (7) 한국화학연구원 박수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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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학연구원 박수진(40) 박사는 "할 줄 아는 것은 연구밖에 없다"고 말하는 과학자다.
매일 도시락을 두 개씩 싸서 출근하고 퇴근은 무조건 밤 10시다.
가정 생활에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에 박 박사는 "일찍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 더 문제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아내에게는 아예 "이렇게 살다 죽게 내버려 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박 박사에게는 올해 좋은 소식이 넘쳐났다.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인명 정보기관인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와 미국 인명정보기관(ABI)으로부터 21세기를 빛낼 인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ABI의 '21세기를 빛낼 인물'과 '21세기를 빛낼 영향력 있는 5백명 지도자' 등 무려 6개 부문에 박 박사가 선정됐다.
6개 부문의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에 박 박사 본인도 헷갈릴 정도다.
지난 9월에는 IBC로부터 '세계의 과학자 1백인'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3년간 1백50여편의 국내외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52건의 특허를 출원한 공로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근무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KIST같은 출연 연구기관을 만들어 과학자를 우대한다고 신문에도 나오고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성격상 숫기도 없고 사람들과 만나서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기로 작정한 후부터 지금까지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해봤어요"
그는 아주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국립과학원(CNRS)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끝내고 지난 1996년 귀국, 삼성전기에 잠시 근무하다 화학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솔직히 국내에서는 공부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프랑스 연구소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이 때의 경험이 제 연구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불어를 잘 못해서 지도교수에게 혼난 적도 많았는데 바캉스 시즌에도 계속 학교에 나가 연구를 했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알려졌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프랑스 지방신문 기자가 찾아와서 두 번씩이나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어요" 그의 연구 분야는 표면 처리 기술이다.
고체의 표면은 액체나 기체와 달리 매끄럽지 못하고 울퉁불퉁하게 돼있다.
이 특성을 파악하면 재료의 성능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쇄회로기판(PCB)에서 불량이 나오는 이유는 대부분 표면에 도금이나 인쇄를 할 때 잘 붙지 않아서 발생한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반도체나 전자부품, 복합재료 뿐만 아니라 의약품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약물이 인체에 투입됐을 때 흡수율을 높이려면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캡슐로 약물 외벽에 코팅 처리를 해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직까지 대부분 연구가 원재료의 성능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지만 실제 표면 처리를 제대로 하면 원재료의 물성을 두 배 이상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원재료의 물성 자체를 올리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표면 처리 기술도 매우 중요하며 실제로 외국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합니다"
올해 안에 발간되는 그의 논문은 55편이다.
이 가운데 절반은 해외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다.
적어도 매주 한 편 이상의 논문을 쓴 셈이다.
그렇다고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해외에서 나름대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에 꾸준히 논문을 써내고 있다.
"세계적인 인명정보 기관에서 저에 대해 과분한 평가를 해 준 것은 논문과 특허 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과학자 1백인에 선정됐지만 현존하는 과학자 가운데 뛰어난 순으로 1백명을 선정한 것은 아닌게 확실합니다.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현존하는 과학자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제가 1백명 안에 들었다는 것은 향후 발전 가능성을 평가해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양질의 논문 1천편을 쓰는 것이다.
은퇴 후에는 자라나는 청소년 들에게 과학이 재미있다는 걸 알리는 일에 매달리겠다는 소박한 희망을 갖고 있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