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 탐구] 리처드 파슨스 < AOL.타임워너 차기 CEO >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은 한마디로 인터넷과 콘텐츠의 환상적인 결합이었다.
좀더 의미를 부여하면 신경제와 구경제가 가장 절묘하게 만난 일대 사건이었다.
연매출 4백억달러라는 양적인 측면보다는 최근 '해리포터' 영화의 성공에서 보듯 모든 것을 가능케 해주는 마술 같은 존재가 됐다.
합병 1년.
그러나 아직은 '성공'을 얘기하기 이른 시점이다.
신경제(AOL)와 구경제(타임워너) 세력간 내부 갈등이 빚어진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영층에 대변화가 일어났다.
핵심인 최고경영자(CEO)가 전격적으로 갈렸다.
내년 5월부터 지휘봉을 잡게 된 사람은 현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리처드 D 파슨스(53).
지난주 제럴드 레빈 CEO의 사임 발표와 함께 후계자로 임명됐다.
최근 들어서야 겨우 대기업의 최고위직에 오르기 시작한 '흑인 경영자그룹'에 합류한 그는 어떤 마법을 부릴까.
파슨스의 CEO 등극은 그가 타임워너 출신이라는 점에서 피인수기업의 경영권 장악이란 평가도 있다.
스티브 케이스 회장은 그야말로 '얼굴 마담'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합병회사가 올 목표인 매출 4백억달러와 1백10억달러의 캐시플로를 달성하지 못했고 그 책임의 상당부분이 주력 성장엔진인 AOL 인터넷분야에 있다는 점에서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AOL 인터넷망의 가입자수 증가가 더딘 상태다.
규제강화와 경기침체로 초고속 온라인서비스로의 이행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파슨스의 CEO 임명이 구경제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의 임명 배경이나 그의 성품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우선 그의 임명 배경이 회사의 커다란 전략변화와 직접 관련되지 않다는 점이다.
현 CEO인 제럴드 M 레빈(62)의 사임은 경영부진에 대한 책임이 아닌 그야말로 개인적인 이유에서다.
레빈은 지난 97년 뉴욕 브롱스의 고교 교사였던 아들 조너선이 제자에 의해 살해된 이후 은퇴를 생각해 왔다.
지난 9.11 테러는 은퇴를 발표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뿐이다.
그는 남은 여생을 대학시절 전공인 신학에 몰두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갑작스런 사임발표는 임기(2003년) 전에 그만두려면 6개월 이전에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레빈과 파슨스는 오랫동안 한솥 밥을 먹은 사이.
레빈이 이사회에서 파슨스를 후임으로 적극 천거한 것은 그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당장 회사전략에 커다란 변화가 없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그래서다.
파슨스의 성격을 봐도 빠른 변화를 점치기는 어렵다.
그는 미디어나 인터넷의 전문가가 아니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기보다는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는데 천부적인 재질이 있다.
레빈은 파슨스를 타임워너로 데려왔을 때 주변에서 "아무런 경험도 없는 사람을 데려온 것은 미친 짓"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파슨스는 곧 레빈의 오른팔이 되었다.
'재계의 외교관'이라고 불릴 정도의 타고난 정치적 감각과 협상능력으로 어려운 일을 모두 해결해 냈기 때문이다.
그의 '조정력'은 2년 전 AOL과 타임워너가 세기적인 합병협상을 벌일 때, 그리고 합병승인을 받기 위해 규제당국이나 경쟁자들을 설득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그는 마이클 아이스너 디즈니 회장,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넘너 레드스톤 바이아컴 회장, 배리 딜러 USA네트워크 회장 등을 모두 설득시켰는데 "그것은 정말로 대단한 기술"이었다고 레빈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91년 타임사와 워너 커뮤니케이션의 합병 당시 파슨스를 처음 만났고 95년 타임워너의 CEO가 됐을 때 자신이 맡고 있던 사장직을 넘겨주기도 했던 레빈은 파슨스를 "회사를 조화로운 방향으로 함께 나가게 하기 위해 직원들을 설득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평가한다.
경쟁회사인 바이아콤의 CFO로 타임워너 시절 파슨스와 함께 일했던 리처드 브레슬서도 "직원들이 처음엔 시간낭비라고 거절했던 장기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남다른 재주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별명은 '커다란 곰인형'.
1백90㎝의 큰 키에 묵직한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항상 웃는 소탈한 성격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업무 스타일은 매우 분명하다.
케이블 통합 운영방안에 대해 AT&T의 마이클 암스트롱 회장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그는 최근 이사회 석상에서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깔끔한 보고를 해 이사회 멤버들이 그를 차기 CEO로 선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정도다.
파슨스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기업세계에서 적이 거의 없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할 때 더욱 행복하다. 만일 나만 행복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뭔가 잘못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라는 철학은 왜 그가 적이 없는지를 잘 말해준다.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사회봉사는 한발짝 더 나간다.
흑인 밀집지역인 맨해튼 할렘의 지역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극장인 '아폴로'가 재정위기에 봉착하자 직접 극장운영재단의 회장을 맡아 재정위기를 넘겼다.
정치가가 아닌 시민운동 차원에서의 공화당원인 그는 올초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헌 전 상원의원과 함께 사회보장 프로그램 개혁위원회의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공화당 후보로 뉴욕시장에 당선된 마이클 블룸버그의 시장인수팀 일원이기도 하다.
모든 법칙에 예외가 있듯 그에게도 '예외'는 있다.
루돌프 줄리아니 현 뉴욕 시장이 그의 적이라는 점은 그런 예외중 하나다.
포드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함께 일했고 법률회사 동기생인 줄리아니는 한때 파슨스에게 부시장으로 일해 달라고 할 정도로 가까웠던 사이였다.
그러나 줄리아니가 타임워너 계열인 CNN의 경쟁회사인 폭스뉴스채널을 도와주기 위해 몇 차례 타임워너측에 불리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됐다.
공동 COO였다가 이번 CEO 선임에서 탈락한 로버트 피트먼(47)도 잠재적인 적이다.
피트먼은 AOL 출신으로 야심만만하고 도전적인 인물.파슨스의 CEO 선임 이후 "그는 나보다 CEO에 걸맞은 인물"이라며 "그가 그만두는 날 나도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 '충성서약'을 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재계의 외교관인 파슨스가 피트먼을 어떻게 다룰지가 그의 '롱런'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
-----------------------------------------------------------------
[ 약력 ]
* 1948=뉴욕 브루클린 출생
* 1969=하와이대학 졸업
* 1971=뉴욕 유니언대학 로스쿨 졸업 및 변호사시험 수석합격
* 1971~1977=뉴욕주지사 및 부통령 보좌관
* 1977=패터슨 벨렙 웹 & 타일러 법률회사 파트너
* 1988=다임 은행 사장
* 1991=타임워너 이사회 멤버
* 1994=타임워너 사장
* 2001=AOL타임워너 공동 COO
* 2001년 12월=AOL타임워너 차기 CEO로 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