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며 한국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주초 진념 부총리는 일본정부에 엔화급락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원·엔의 가치가 마지노선으로 여겨왔던 1백엔당 1천원선이 붕괴될 조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주룽지 중국총리는 11월22일 엔화 대비 위안화의 지속 상승을 마냥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엔저는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외환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일본 외환당국의 공격적 외환시장개입 결과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외환당국은 엔화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지난 9월11일 테러사건 발생 직후 사상 유례없는 큰 규모인 2백70억달러를 매입했다. 미국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이 엔화약세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정책적 의도는 무엇이고,엔화약세가 지속된다면 향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근 엔화급락은 '경쟁적 평가절하정책'에 기인한 일본정부의 의도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정책은 엔화가치를 낮게 유지,수출회복을 통해 일본경제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다. 이처럼 경쟁적 평가절하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는 일본의 속사정은 심각한 경제상황과 경기회복을 위한 정책수단 부재에 있다. 내년 일본경제는 불황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고 전망(실질경제성장률 -1%)하고 있다. 2003년의 경우에는 수출회복을 전제로 겨우 0.75%의 경제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또 경기회복의 수단으로 내수진작이 아닌 환율정책을 선택한 것은,내수진작용 경제정책수단이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반영한다. 장기불황에 따른 세수격감으로 재정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경기회복용 재정정책수단은 이미 바닥난 상태이고,제로금리수준에서 저금리 통화정책은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장기불황을 탈피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환율정책이 선택되었다. 일본의 평가절하정책이 우리나라와 중국 등 교역상대국에 미치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첫째,일본의 외환정책은 궁극적으로 일본 실업문제를 교역상대국으로 이전시킨다는 소위 '인근 궁핍화정책'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둘째,일본의 지나친 평가절하정책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동반 평가절하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게임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와 중국이 맞대응할 경우 일본의 평가절하폭은 더욱 커지게 되고,이는 다시 교역상대국의 맞대응을 초래해 아시아 지역에서 환율불안문제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1930년대 발생한 세계 대공황 주원인의 하나로 자국의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각국이 앞다투어 환율을 평가절하하는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경쟁적 평가절하정책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셋째,엔화약세에 대한 정책으로서 원화약세를 위한 외환시장개입은 대외경쟁력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국내 외환시장의 환율불안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국내 경기의 조속한 회복과 외화자금유입의 결과로 원화가치가 강세를 보이게 되는 경우 원화약세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형태의 외환시장개입이 요구된다. 그러나 낙관적인 경기회복을 기반으로 한 시장참여자의 원화강세 전망과 다른 한편 대외경쟁력 확보를 위한 차원에서 원화약세를 원하는 정부의 의지와 충돌은 불가피하며,이러한 충돌로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소지가 크다. 따라서 일본과 교역상대국 모두에게 최선의 방안은 일본정부가 평가절하정책을 포기하는 것이지만,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의 맞대응전략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정부가 이 전략을 시행하는 데 있어 앞에서 지적한 국내 외환시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한편 평가절하정책의 위험성은 엔화의 평가절하폭과 교역상대국의 맞대응에 달려 있음을 감안할 때 향후 엔화의 평가절하정책은 소폭으로, 그리고 점진적이기를 일본 정부에 기대한다. jhim@ccs.sogang.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