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지난 5월중순 실로 오랜만에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여야3당과 경제관료들이 산적한 민생 경제현안을 풀겠다며 '여.야.정 정책협의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운데 정쟁으로 날밤샌다'는 따가운 여론에 떠밀린 측면도 없지 않았다. 어쨌든 회의는 합숙토론 끝에 7개항의 합의문을 도출해 냈다. 회의직후 여야 모두 "경제상황에 대한 상당한 인식차를 확인했지만 허심탄회하게 토론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8월에 열린 2차 '여.야.정 경제정책협의회'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합의 항목은 1차때보다 3개항이 많았지만 '알맹이 없는 회의'라는 총평이 나왔다. 재래시장활성화법, 이자제한법, 지역균형발전법 등 1차회의에서 합의된 내용이 포장만 달리한 채 버젓이 합의문에 끼워졌으며, 지역난방 민영화 등 이미 정부가 시행중인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보다 큰 문제는 당시 합의된 내용도 태반이 당사자인 국회로부터 외면당해 사문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야.정이 원칙 합의한 '대기업 규제완화'는 지금도 여야간 핵심쟁점으로 남아 있다. 최근 국회에서 처리된 이자제한법은 이자상한규제 미비로 사실상 백지화됐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지역균형발전법은 민주당 내부에서 조차 교통정리가 안된 상태다. 지금은 그나마 회의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정부 여당의 정치쇼에 들러리 서기 싫다'며 한나라당이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정부와 여당,정부와 야당이 별도 모임을 갖고 있다. 충분한 사전조율이나 준비 없이 하룻밤새 뚝딱 만든 후 '합의'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다붙이는 '한건주의식 발상'이 결국 한계를 노출하고 만 것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