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주와 가치주 사이를 오가던 시장 "매기(買氣)"가 가치주쪽으로 쏠리고 있다. 경기가 조기에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옅어지면서 증시가 상승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급등세를 이끌었던 반도체 등 IT(정보기술)주에 몰려있던 매수세도 내수 가치주 등 개별종목으로 분산되는 추세다. 19일 거래소 시장에서는 금강고려화학이 가격제한폭까지 치솟고 롯데칠성은 50만원대를 돌파하는 등 가치주의 시세가 폭발했다. 태평양과 신세계는 물론 현대자동차 제일제당 농심 현대백화점 등도 오름세를 타면서 "가치주 잔치"를 벌였다. 특히 외국인에 이어 국내 기관도 가치주로 눈길을 돌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성장주 매기 분산=연말을 앞두고 매매규모를 줄이는 있는 외국인이 최근 내수 성장주로 매기를 분산시키고 있다. 거래대금 면에서는 시가총액 상위종목의 매수세가 많지만 핵심종목을 놓고 외국인끼리 "치고받는" 양상이 엿보인다. 외국인은 이날 삼성전자를 30만주 사고 20만주 가량 내다팔았다. 전날에는 46만주와 15만주를 각각 사고 팔았다. SK텔레콤에 대해선 외국인이 4만주를 매수하고 2만7천여주를 매도했다. 전날에는 4만주를 사고 3만주를 처분했었다. 과거와 달리 외국인 매기가 응집력을 갖지 못한 채 종목별로 분산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내수 가치주에 매기가 모이고 있다. 실제 종합주가지수가 장중 고점(715.93)을 찍었던 지난 6일 이후 외국인은 SK텔레콤 한국전력 삼성SDI LG전자 하이닉스반도체 등을 많이 팔고 삼성전자 포항제철 삼성전기 현대자동차 신한지주 신세계 등을 사들여 가치주 선호 현상을 드러냈다. 외국인은 이날도 삼성전자와 국민은행을 제외하고는 현대차 굿모닝증권 LG전자 데이콤 현대모비스 LG애드 등을 사들였다. 국내 기관도 핵심블루칩 외에 하나은행 태평양 대림산업 등 가치주를 선별적으로 매수했다. 가치주로 매기 이전=핵심종목을 놓고 외국인끼리 매매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일부 발빠른 외국인은 이미 가치주로 말을 갈아탔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와 현대증권 정태욱 이사 등 외국계 기관의 움직임에 밝은 전문가들도 "최근 외국인의 관심은 기술주보다 내수주"라고 입을 모은다. 가치주의 인기는 이날 금강고려화학과 롯데칠성이 급등으로 나타났다. 금강고려화학은 22개월만에 상한가를 기록,사상 최고주가를 경신했고 롯데칠성도 14% 가까이 올라 상장 이래 처음으로 50만원대를 돌파했다. 현대차 신세계 제일제당 하이트맥주 농심 현대백화점 제일모직 유한양행 등 가치주도 일제히 오름세를 탔다. 대우증권 홍성국 투자정보부장은 "연말을 앞두고 주가 상승의 모멘텀이 없자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주식을 선호하고 있다"면서 "기업 실적과 배당여력이 뛰어나고 국민연금의 매수세가 예상되는 가치주를 선취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망=수출보다 내수가 경기 회복을 이끌 것이라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소비지출 급증세와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책 등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안전성은 물론 성장성까지 갖춘 내수 가치주가 꾸준한 관심을 모을 전망이다. 동양증권 박재훈 투자전략팀 차장은 "최근 외국계 기관에서도 한국의 내수 가치주가 외국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당분간 성장주 보다는 가치주 중심의 시장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내재가치 보다 주가가 저평가된 가치주에 대한 선취매에 관심을 가져볼만하다고 설명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