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11조 개정안에 대한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개정법률안은 임원임면,정관변경,합병,영업양도 등 경영권 변동사항에 국한해 금융·보험회사의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지배주주와 그 특수관계인 보유주식과 합산해 30% 범위 내에서 허용하고 있다. 이번 개정법률안에 대해 재계는 지지를,시민단체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개정법률안에 대한 반대론자의 논지는,금융계열사 소유지분에 대한 의결권 허용은 고객돈으로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적대적 M&A가 사실상 봉쇄되어 시장규율에 의한 지배주주 견제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대론자는,만약 개정법률안이 통과되어 대형 금융·보험회사를 거느린 재벌의 지배주주가 국민 저축을 경영권 방어에 이용하게 되면 자본시장의 경영감시기능이 작동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산운용과 관련된 고객과 재벌 금융사간의 이해 상충으로 금융·보험업 운영이 왜곡돼 금융산업의 안정과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소지가 있으며,유인구조의 왜곡으로 많은 재벌이 금융업 진출을 시도하게 되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라는 시장경제질서의 근본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론자 주장의 기저에는 '재벌은 규제돼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정책판단이 흐려질 소지가 있다. 재벌이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것은 금융산업의 낙후로 인한 자금조달의 불확실성을 완화시키기 위해 그룹성장과 함께 내부금융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4대 재벌이 이만큼 성장한 데에는 금융계열사의 기여가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공익적 차원에서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는 차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는 보험업법 등 개별법령에 의해 금융계열사의 계열사 주식취득을 엄격히 제한하는 '원인규제'를 통해 추구하는 것이 정책순리다. 이같은 시각에서 금융계열사의 소유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취득규제에 행사제한이 더해지는 전형적인 중복규제이기 때문에 폐지돼야 한다. 개정법률안이 적대적 M&A정책과 상충된다는 주장은,외국투자자의 의결권은 규제하지 않고 우리나라 금융·보험사만 차별적으로 규제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반감된다. 적대적 M&A정책의 기본취지는 시장규율을 통해 지배주주의 경영을 감시하는 것이지,지배주주를 적대적 M&A에 무력해지도록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적대적 M&A가 열려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규율이 작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의 관건은 적대적 M&A에 대한 '역차별'을 없애 경영권시장의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또한 외국자본의 우리기업에 대한 적대적 M&A 대상은 우량기업이다. 자본시장 개방에 따라 삼성전자 포철 같은 우량기업의 외국인지분은 50%를 넘어서고 있다. 적대적 M&A의 속성상 그 가능성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들 주요기업에 대한 경영권 위협은 어느 정도 현실화되어 있다. 따라서 의결권허용 문제는 재벌에 대한 '보호막'이전에 우량기업 방어라는 '국익'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편 금융·보험사의 자산은 고객이 특정 금융·보험사의 자산운용 능력을 신뢰해 위탁한 자산이기 때문에 수임자는 당연히 고객자산을 보호해야 한다. 의결권 제한은 자산운용에 제약을 가함으로써 고객에 대한 충실의무와 배치된다. 만약 신탁자산의 손실이 예상될 경우 의결권 행사제한으로 손실이 실제화되면,손실은 위탁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결국 금융·보험사의 의결권행사 제한은 법의 남용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더 이상 개정법률안이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하는 지배주주에 대한 특혜로 치부돼서는 안된다. 지금은 의결권 제한이 재산권 보호라는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하는지,국익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냉정하게 짚어볼 때다. 의결권제한은 선진 외국에서도 입법예가 없는 반(反)시장적 규제인 것이다. dkcho@mju.ac.kr .................................................................... ◇이 글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