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서양에서는 오페라가 가장 대중적인 오락 상품이었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큼 살만하면 즐겨 찾던 것이 오페라였고 지적 예술적으로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던 것이 오페라였다. 영화 '시네마 파라디조'를 관람하는 사람들처럼 예전에 오페라 청중들은 하루 동안의 스트레스를 오페라 극장에서 마음껏 풀곤 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국내 연출자 김학민씨가 쓴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명진출판,9천9백원)는 오페라라는 장르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흥미로운 유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오페라가 아름다운 노래와 극적인 드라마 의상 조명 등이 하나로 어우러진 감동적인 종합예술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강조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페라라는 서양의 오래된 예술 장르 속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온갖 사연과 삶의 다양한 진실들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7편의 오페라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주인공들이 낯선 외국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친구 혹은 나 자신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 독자는 '과장된 몸짓으로 목청을 돋워 노래하는 뚱뚱한 소프라노 가수'를 연상하거나 '서양 사람의 호사스런 귀족 취미'라고 생각하던 선입견에서 벗어나 오페라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의 새로운 오페라 읽기 속에는 연출자로서의 무대 현장경험이 곳곳에 묻어있다. 작품들을 따라 읽다보면 실제 공연을 관람하는 듯 극적 사건과 음악의 이미지들이 생생하게 떠올려진다. 저자의 화려한 문체와 수십장의 컬러 화보에 담긴 무대 세트 및 유명 가수들의 연기 모습은 책읽는 기쁨을 두배로 만들어준다. 7편의 오페라들을 통해 7가지 색깔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려 했던 것은 오페라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저자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다. 오페라의 대중화를 생각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선정된 7편의 오페라들이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역설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카르멘' '살로메' '오텔로'는 사랑과 더불어 죽음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포함한다. '코지 판 투테' '돈 지오반니' '피가로의 결혼'은 모두 코미디이지만 그 속에 진지한 주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낭만적이고 희극적인 사건들 속에 숨어있는 작품의 진지한 메시지를 캐내려는 저자의 마음은 오페라가 보통사람들의 삶의 진실을 노래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마음과 맞물려 있는 듯하다. '오페라는 감상하기에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아,나도 평생에 한 번쯤 이런 사랑을 해봤으면 좋겠네'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