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円低)'가 내년 기업경영의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엔화의 환율이 달러당 1백30엔을 넘어서는 등 예상밖의 약세 행진을 지속하자 수출 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화부채가 많은 항공 해운업체등은 원화의 동반약세로 환차손이 크게 늘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일부 기업들은 이미 내년 경영계획 전반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실제로 포항제철 대한항공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등은 엔화 약세가 내년 기업경영의 최대 변수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고 파장에 대한 분석 및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엔화 환율은 25일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백30.95엔을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만 6.80엔 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말 1천2백73원에서 1천3백8원20전(24일 기준)으로 높아졌다. 지금까지는 원화도 이처럼 동반 약세를 보여 악영향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일본 정부가 엔화가치의 추가하락(환율 상승)을 용인할 가능성이 크고 그로 인해 '환율전쟁'이 촉발되면 원화가치의 변동폭도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차는 당장 엔화 약세에 따라 일본차와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는 북미시장으로의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북미는 이 회사 수출 물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 현대차는 판매가 위축되지 않도록 딜러들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연간 90억달러 규모의 외국산 자재부품과 시설장비를 수입하는 삼성전자는 미국과 유럽산 장비의 구매를 축소하고 일본산 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수출부문에서는 일본과 경쟁하는 디지털 가전제품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원가절감과 엔화 영향권 밖에 있는 해외법인의 생산 비중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포철 등 철강업체들도 일본업계가 엔저를 기회삼아 내수감소 물량을 수출로 돌릴 경우 철강가격 회복이 더 늦어질 것으로 보고 이에 따른 경영방안을 다시 짜고 있다. 엔화 차입금이 많은 일부 철강업체들은 엔화 약세로 경영상으로는 이득을 볼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자금운용 계획도 손질하고 있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는 일본 조선업체들이 엔저를 '무기'로 저가수주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이에 따른 대응방안을 중장기 사업방향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은 또 엔저가 내년 초 시작되는 유로화 본격통용과 맞물려 외환시장의 불가측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보고 환율 급변에 따른 리스크 헤지 방안 마련도 서두르고 있다. 외화부채가 많은 해운 항공업계는 이미 비상이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연말을 앞두고 환율이 2개월여만에 다시 1천3백원대를 넘어서 환산손이 크게 불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두 회사는 올들어 3·4분기까지 각각 1천2백59억원,1천1백23억원의 환산손을 기록하고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도 미국의 테러사태에 따른 승객감소로 어려움을 겪은데 이어 업친 데 덮친 격으로 환차손까지 늘어나 올해 영업실적이 크게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내년 내수와 수출 전망이 모두 어두운 상황에서 엔저라는 달갑지 않은 변수까지 가세,경기상황을 더욱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