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D램업계의 재편과정에 또 하나의 변수가 추가됐다. 하이닉스와 독일 인피니언으로 추정되는 제3의 업체간 접촉이다. 하이닉스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의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 이 카드를 준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마이크론과의 협상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마이크론에만 의존하고 있다가는 자칫 헤어나기 어려운 궁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마이크론이 도시바의 미국공장을 인수,하이닉스를 압박해오자 대응책으로 하이닉스도 유사한 카드를 내민 것 같다는 시각도 있다. ◇마이크론에 끌려다니지 않겠다=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협상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하이닉스 구조조정특위 관계자들은 "협상의 속성상 다소 밀고 당기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결과를 비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 결렬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마이크론은 도시바의 미국공장 인수를 결정한 이후 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마이크론의 스티브 애플턴 사장이 평소에 "경쟁자를 돕는 거래는 하지 않겠다.시장에서 경쟁자를 제거하는 협상에만 관심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던 점을 감안하면 협상에서 강경 입장을 고수할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선발 D램업체 중 가장 불리한 입장에 있는 하이닉스가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최종단계에서 하이닉스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울 수도 있다. 지분인수 가격을 최대한 낮게 제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채무탕감과 공장설비 감축 등을 요구,공장의 실체를 최대한 보전하면서 대금은 최대한 받아내려는 하이닉스와 채권단의 마지노선을 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국환 하이닉스 구조특위 위원장은 지난 13일 한 케이블TV와의 회견에서 "마이크론과의 협상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마이크론과의 협상은 잘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전제 아래 "삼성전자나 인피니언 등 누구와도 얘기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피니언과의 궁합은=인피니언은 도시바와의 협상타결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마이크론에 선수를 빼앗겼다. 마이크론과 하이닉스 도시바가 연합군을 형성하게 되면 인피니언의 입지는 위태롭게 된다. 인피니언으로서는 어떤 업체든지 붙잡아야만 하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독자노선을 고수하고 있고 대만의 군소업체들과의 제휴로는 시장지배력을 높이기 어렵다. 하이닉스도 마이크론과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현 상태에서는 인피니언밖에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제휴협상이 시작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인피니언은 마이크론에 비해 시장점유율은 낮지만 유리한 점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인피니언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려운 만큼 마이크론보다는 덜 강경한 입장일 가능성이 있다. 또 D램뿐만 아니라 비메모리부문이 강해 똑같이 D램 의존도가 높은 마이크론보다는 시너지 효과가 크다. 인피니언의 자체 재무구조가 취약하다는 점이 문제지만 뒤에는 지멘스가 대주주로 버티고 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