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의결권제한' 완화한 뜻 .. 崔炳鎰 <이화여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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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완화하려는 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기업계열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주식에 대한 의결권은 원칙적으로 제한돼 왔는데,이러한 제한을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 30% 범위에서 대기업계열 금융·보험사의 의결권을 허용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에 대해 일각에서는 고객재산인 저축과 보험료로 대기업의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을 터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기존의 금융·보험사 보유 주식의 의결권 제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첫째,외국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주권 행사를 제약하지 않으면서,국내 계열소속 금융기관만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 위배된다.
둘째,개별 법령에서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취득이 엄격히 제한받고 있는 상황에서 취득한 주식의 의결권을 다시 제한한다는 것은 이중규제이다.
셋째,현재 은행 및 투신의 설립 근거법령은 계열사의 주식을 소유한 경우 합병,영업양도,임원선임 등 신탁자산에 명백한 손실이 예상될 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상의 제한 때문에 이러한 의결권 행사가 불가능하다.
자산운용의 안전성과 수익성을 최대화하려는 경영목표는 금융·보험사, 일반기업 모두 동일하다.
자산가치가 급격히 변화할 수 있는 적대적 인수합병,영업양도 등이 발생할 경우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의결권 제한은 계약자 자산보호를 제약하는 조치인 셈이다.
바로 이 때문에 고객재산인 저축과 보험료로 대기업의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는 반대논리는 일방적인 발상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의결권을 제한해온 것은 전혀 불합리한 조치였나? 명백한 이중적인 규제장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결권제한의 부정적 측면이 덜 부각되었던 이유는 국내자본시장의 폐쇄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제한이 전면 폐지되고 외국인에 의한 국내기업의 매수·합병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의결권을 계속 제한한다면 외국기업보다 국내기업을 불리하게 대우하는 심각한 역차별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외국인들이 저평가된 국내기업을 사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자체는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자본주의 운용원칙에 합치하는 것일 수 있지만,국내기업들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법적으로 제약하는 것은 경영권 쟁탈 게임에서의 팽팽한 견제와 균형을 일방적으로 허물어 버려 주주의 이익을 오히려 저해한다.
의결권제한의 폐단이 심각하다면 왜 30% 한도만 허용하느냐 하는 의문 역시 제기할 수 있다.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다는 점과 개별 법령에서 이미 금융·보험사의 주식취득이 제한되고 있음에 비추어 30%라는 한도를 꼭 설정해야 할 경제적 논리는 부족하다.
여기에는 한국의 정치 경제논리가 등장한다.
금융자본을 통한 산업자본 지배가 국민경제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끼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돼 있고,각종 비리및 대형 경제사고 때마다 확인되는 한국 금융시장의 낙후성과 비리구조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투철한 집단을 생산해 내었다.
의결권 완화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대기업들이 국민의 저축자금을 이용한 지배력 확대를 위해 금융업 진출을 더욱 늘릴 것이고 대기업의 부정적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역시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이다.
대기업들의 금융업 진출이 확대된다면,금융업에서의 경쟁이 촉진되어 금융시장의 효율성 제고,국민경제적 자원배분 개선,고객의 만족도 증대 등 긍정적 효과도 동시에 발생한다.
30%라는 범위는 규제완화,경영권 쟁탈시장의 균형확보를 주장하는 논리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주장하는 논리 간의 타협점이다.
모든 안전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극단적인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면,인간은 아무런 교통수단을 발명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byc@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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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