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건 밖으로 나가건 지옥이긴 마찬가집니다. 두렵긴 해도 일감이 없는데 앉아서 망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요코하마에 공장을 두고 있는 중소기업 미쓰요시공업. 하드디스크 구동장치를 만드는 이 회사의 오쿠데라 세이지 사장은 중국으로 사업거점을 옮기기로 최근 결정했다. "너도 나도 밖으로 나가면 안(일본)에서는 무얼 해 먹고 사느냐"는 동업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중국 땅에서의 사업이 녹록지 않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건비가 일본의 20분의 1 수준인 중국 제품과의 경쟁은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금융이 일본 경제의 핏줄이라면 제조업은 일본을 경제강국으로 키운 뼈대와 살이 었다. 그러나 제조업 불패신화는 안과 밖에서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수출 시장에서는 중국을 선두로 한 아시아국가의 저가양질 제품이, 안에서는 기업들의 탈(脫)일본 러시가 제조업을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은 경계 수준을 넘어 차라리 공포 그 자체다. 중국산 공산품은 이미 일본 시장을 깊숙이 점령했다. 중국 상품의 일본 시장 점유율이 15%선이라지만 중.저가 상품 매장은 중국산 천지다. 중국산 공산품의 공습에는 에어컨 자동차등 하이테크제품까지 가세했다. 일본 언론은 중국이 자동차를 수출하는 날 일본 제조업에는 조종이 울릴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스즈 자동차는 중국산 트럭을 내년부터 들여다 팔기로 한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의 일본 탈출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0개 공장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미 13.3%의 중소기업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겼다. 도쿄증시 1부에 상장된 5백62개 제조업체중 절반이 3년 이내에 해외생산을 더 늘릴 예정이다. 해외 생산 확대와 맞물려 일본 내의 공장 폐쇄도 다반사다. 연초부터 12월초까지 문을 닫거나 폐쇄방침이 확정된 상장기업들의 공장은 69사,1백24개로 작년 동기의 3배다. 충격 또한 일파만파다. 정책과학대학의 하시모토 히사요시 교수는 "대기업의 1개 공장 폐쇄는 중소기업 10여개를 생사기로로 몰아넣는다"며 "산업계 전체가 엄청난 구조조정에 휘말려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무역흑자는 지난 11월중 4천9백83억엔(약 40억달러)으로 15개월 연속 내리막길이다. IT(정보기술) 불황의 이유도 있지만 중국과의 경합, 제조업 공동화로 수출기반이 뿌리째 흔들린 탓이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유일한 피난처로 엔저를 꼽고 있다. 엔화의 달러 환율이 5엔만 높아져도 제조업은 5천억엔 이상 이익이 늘기 때문이다. (다이와종합연구소) 그러나 중국의 위협, 고물가 고임금 등에 대한 근본 대책이 없는 한 체력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는게 중론이다. 노구치 유키오 아오야마대 교수는 "중국과 맞붙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며 "중국이 할 수 없는 분야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