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통용은 유럽통합을 향한 중대한 진전이다. 유로는 현재 세계경제에서 독주하고 있는 미국 달러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통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있어 유로화의 도입은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진 이후 가장 큰 변화였다. 유로화는 유럽의 역내 무역시 환율변동에 따른 충격을 완화해준다. 특히 독립적인 유럽중앙은행(ECB)의 활약이 통화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3년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유로를 도입한 국가들의 재정적자 규모는 지난 1995년 국내총생산(GDP)의 5%를 넘었다. 하지만 작년에 균형재정을 실현했다. 올해 경기둔화로 재정적자가 소폭 늘어나겠지만 GDP의 1%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국가간에 엄연한 경제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재정을 실현한 것은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유로화는 금융시장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전체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유로화 표시채권이나 신디케이트론 등의 발행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게 증거다. 작년 유로화 채권은 총 9천억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지난 98년 전체 발행총액의 세 배가 넘는 수준이다. 유로화는 지난 3년간 저평가돼 왔다. 미국에 비해 역내 경제성장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단 경제성장 문제만은 아니었다. 미국경제가 경기침체에 들어섰는데도 유로화 강세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상당수 투자자들은 여전히 투자 매력 지역으로 유럽보다 미국을 선호하고 있다. 이는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최근 지적했듯 미국의 생산성이 유럽보다 월등하다는 시장의 예측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럽지역의 경제통합 논의는 통화단일화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다. 금융과 에너지 부문만 봐도 유럽이 단일시장이 되기에는 멀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유로화의 도입이 역내 구조개혁과 경쟁을 촉진할 것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경제학자들은 유럽지역의 성장과 고용창출이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통합과 안정은 생산성 높은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자유화와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동시에 필요한 요소다. 이들이 고용창출이나 복지와 함께 갈 수 없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유럽은 이같은 개혁을 추진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유로화에 동참하고 있는 국가들은 재정적자를 모두 GDP의 3% 이내로 줄여야 한다. 중기적으로 균형재정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이와 함께 생산성과 성장을 촉진하는 질적 통합,그리고 구조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유로화는 아직 국제 보유통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 및 정치적 힘이 달러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 유로의 역할은 증대되고 있으며 유럽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점차 커지고 있다. 유럽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유로화의 역할은 정치적 요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유로는 한 국가에만 기반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로화는 앞으로 회원국간 정치적 통합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유로는 현재 두 가지 도전을 받고 있다. 경제와 정치적인 도전이 그것이다. 경제적인 과제는 구조개혁과 함께 유럽의 경제성장을 견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완전한 단일시장을 건설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통합된 유럽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세계를 이끌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 정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이 글은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최근 벨기에에서 열린 유로화 관련 비공식회의 'ECOFIN 회의'에서 행한 연설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