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수원지법이 내린 판결은 회사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사회 결정에 대한 공식적인 책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제조업체 이사들의 경영상 실책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회사에 배상하라고 하는 첫 판결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경영 현실을 무시한 판결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비자금이나 계열사 주식 처분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경영 현실에서 도외시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사건 배경 및 결정=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98년 10월 대표적인 상장회사인 삼성전자의 전.현직 이사 10명을 상대로 3천5백억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 이사회가 지난 88년부터 97년까지 내린 의사 결정중 회사에 명백한 손해를 끼친 것으로 판명된 사안들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였다. 참여연대가 청구한 이사회 손해배상 사건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행위 C일보 등과의 내부거래 행위 부실업체 인수와 그에 따른 출자 및 지급보증행위 계열사 주식의 매도를 원인으로 한 행위 등 총 4가지. 이 중 법원은 뇌물 공여와 부실업체 인수,계열사 주식 매도로 인해 발생한 손해만 인정했다. 이사회가 의사결정에 참여한 것이 객관적으로 확인된 이상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져야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의미와 파장=이번 판결은 지난 97년 제일은행 전.현직 이사들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에 이어 두번째이며 비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으로서는 최초다. 금액면에 있어서도 제일은행 이사들은 1심에서 4백억원을 선고받았으나 이번 삼성전자 이사들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많다. 외국의 경우 다수의 이사들이 구성원으로 돼 있는 이사회에서 회사와 관련된 중요 사항들이 결정돼 결정에 대한 책임을 이사들이 지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런 기업활동의 일부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상 오너 1인에 의해 회사가 경영되는 우리나라 기업현실에서 이사회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직접 이사들에게 묻는 것은 다소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법원이 외형상 의사결정 최고 기구에 그쳤던 이사회를 실질적인 기업경영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인정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번 사건과 같은 주주대표소송은 97년 1천억원 이상 상장기업의 경우 자본금의 0.25%에서 98년 0.01%로 완화되고 있어 관련소송이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발효돼 기업을 감시하는 주주들의 눈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전망=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번 사건과 같은 유사 사건이 빈번해 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기업 변호사는 "외국에서 흔히 볼수 있는 판결"이라며 "이른바 재벌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례적지만 기업경영에 소액주주들의 참여 여지를 사법부가 앞장서서 이끌어 낸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이의도 제기했다. 한 회계사는 "주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서욱진.정대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