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멀고도 먼 선진국의 길 .. 安忠榮 <중앙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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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에 울려오는 아르헨티나 경제의 조종(弔鐘)은 우리의 옷깃을 다시 여미게 한다.
한국의 28배에 이르는 광활한 국토,인구 3천7백만,그리고 1930년대에는 세계 7위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던 나라가 어찌하여 이렇게 추락하고 말았는가?
10여년 전 남극에 가장 가까운 아르헨티나의 자유무역지대 우수아이아시를 방문했을 때 아르헨티나는 분명 자원대국이요,경제대국의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팜파스 대평원,최남단 우수아이아 해협에 무진장으로 존재하는 해양식량자원 크릴새우,그리고 남미의 '백인국가'로 불리면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지식국가…. 부국의 풍모에 전혀 손색이 없는 나라였다.
아르헨티나 경제의 침몰은 1940년대 중반 노동자들의 대중적 요구에 영합한 페론정권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도시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각종 사회정책을 입안한 페론의 포퓰리즘과,연이은 쿠데타 집권 세력들의 부정부패가 나라의 경제기강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파이를 만들지도 않고 파이를 가르는데 국력을 탕진한 것이다.
필자가 호텔식당에서 받아든 메뉴가격표는 연필로 표시돼 있고 지우개가 붙어있었다. 조석지변으로 물가가 뛰니 아예 연필로 가격을 표시한 것이다.
89년에 등장한 메넴 대통령은 살인적 초강성 인플레를 잡기 위해 페소화와 달러를 1 대 1로 고정시키는 조치를 취하고,많은 국영업체들을 민영화하기 시작했다.
그 덕택으로 한 때 경제 안정화는 달성했지만,산업의 국제경쟁력은 도외시됐다.
2000년 한국이 1천7백26억달러를 수출했을 때 아르헨티나의 수출은 고작 2백63억달러에 불과했다.
총수출에서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91%에 육박했지만 아르헨티나는 32%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아르헨티나의 제조업 기반이 결정적으로 취약하다는 증거다.
주로 농산물과 원자재 수출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등이 산업기반이다.
아르헨티나는 몇차례 IMF 구제금융을 반복해 받았다.
한국과 다른 것이 있다면,바로 그 자원보유 덕택에 아르헨티나는 스스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97년 우리는 에너지 수입과 식량수입의 절박성 때문에 모라토리엄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올 8월 우리는 1백95억달러에 이르는 IMF 구제금융을 3년 앞당겨 모두 갚아 버리고 IMF를 '졸업'했다.
아시아 금융위기 동안 거의 무풍지대에 있던 대만과 싱가포르가 올해 마이너스를 기록할 때 우리는 중국 다음으로 높은 2.8%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OECD 가입으로 우리는 선진국 클럽에 일단 등록을 했다.
아르헨티나가 선진 대열에서 역진해 중위국으로 추락한 사실에서 보듯이,2차 세계대전 이후 50여년 동안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탈락한 사례는 있어도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사례는 없다.
한국은 분명히 중진의 문턱을 넘어 섰다.
구조조정과 개혁으로 새 틀을 마련하고,수익성 위주의 금융관행,투명한 기업운용,부패없는 정치가 3박자로 조화를 이루고,문화민족으로서 국제적 도덕가치를 체득한다면 우리는 선진의 문턱으로 더욱 가까이 진입할 수 있다.
내년엔 험난한 과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일본은 만성적인 유동성 함정에 빠지면서 이제는 근린궁핍화 정책기조인 엔저를 최후의 돌파구로 생각하고 있으며,미국도 묵시적 동의를 보내고 있다.
지난 12월 11일 WTO에 가입한 중국은 수출에 박차를 가해 우리의 해외시장을 더욱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 참으로 어렵게 될 수도 있다.
더욱이 내년은 선거의 해이다.
이익집단들의 제몫 찾기가 드세게 나타날 전망이다.
정치권이 득표전략에 급급해 경제운용을 정치논리화한다면 우리의 처지는 다시 또 후퇴하게 될 것이다.
특히 격렬한 노사분규는 반드시 다스려져야 한다.
선진국은 영원한 선진국이요,중진국은 영원한 중진국이라는 반세기 동안의 가설을 뒤엎을 실증적 사례를 우리는 만들어 갈 수 없는 것인가? 아르헨티나에 비교해 성공 사례를 확실히 굳혀 간다면 한국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돋보이고 대외신인도는 더욱 고양될 것이다.
cyah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