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사적인 추종의 관계다. 때문에 석ㆍ박사 과정생들은 충성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선후배간 맹종과 복속이 요구된다"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한국학 연구자 박노자 교수(블라디미르 티호노프,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가 세밑에 펴낸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지적한 한국대학의 현실이다. 그는 이 책에서 대학은 물론 군대 종교 재외동포 문제등 우리 사회의 금기사항들을 풍부한 어휘와 정확한 문장으로 날카롭게 헤집었다. 그리곤 시혜.수혜의 논리로 움직이는 '이면의 진실'을 반성하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박 교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대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모스크바대에서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러시아 학자다. 그런 그가 한국사회를 속속들이 꿰뚫을 수 있었던 건 91년부터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대학을 방문한 한국 교수들의 통역을 맡고 관광객을 안내했는가 하면 러시아 보따리장수를 데리고 동대문시장을 누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한국 2000'도 번역했다. 그의 비판이 단순히 국외자의 감정적 비난이나 뭘 모르는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것도 이처럼 한국사회에 대한 폭넓은 체험및 학문적 지식을 토대로 한 때문일 것이다. 박 교수 이전에도 독일인이던 이한우씨가 '툭 터놓고 씹는 이야기',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씨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한국인 비판'을 통해 한국의 치부를 짚었다. 이들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형편없는 질서의식과 배타적 패거리주의다. 쓴소리 끝에 이들이 내놓는 한국병 치유책은 한결같다. 터무니 없는 '우리'중심에서 벗어나 열린 사고,열린 문화를 지향하라는 것이다. 이들의 지적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라도 새해에는 누군가 뛰어나면 똘똘 뭉쳐 뒷다리 잡고,노동력의 질보다 충성심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벗어났으면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