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宇熙 < 세종대 석좌교수 / 경제학 > 으레 경상수지가 흑자이고 물가가 안정되면서 실업률이 낮으면,이런 거시지표만으로도 나라경제가 잘되고 있다고 만족을 한다. 지금 같아선 올해의 성장률이 4∼5%,경상수지 흑자가 1백억달러,소비자물가가 3%,실업률이 3%선 정도만 되어도 그리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지표만으로는 우리 몸에 비유컨대,겉모양이 건강해 보이는 것일 뿐,언제 암이라고 진단될지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1997년 우리가 IMF를 맞은 때를 생각해 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경기를 좋게 하기 위해,또 경제성장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 돈을 찍어 내거나,예산을 반 이상 상반기에 풀어 소비를 부추긴다든지,경상수지 흑자를 늘리기 위해 환율을 마구 올리거나,우리 자산을 외국에 팔아 넘기는 것 등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의 졸속 정책으로서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않는다. 통화 금리 환율 세율 등은 물론 주요 경제정책 수단이지만,이것이 기업의 생산성과 국가경쟁력 잠재성장력 등에 이어지지 않는 한,암 치유는 가망이 없다. 우리 사회·경제의 암적 병폐는 기업경영이나 가계소비,유통부문에도 없는 건 아니지만,비경제부문에 더 만연되어 있다. 부실과 부패가 제도와 관행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지난 4년 간 개혁한다 해서 손 댄 4대 개혁(정부와 공기업 개혁,재벌구조조정,금융개혁,노사관계 개혁)이 맴돌기만 했다든가,교육개혁 의약분업 건강보험통합 농수산개혁 등이 오히려 혼란만 가중,공중분해되고 있음은 이를 잘 반증하고 있다. 우리는 새해들어 다음 몇가지를 바라고자 한다. 먼저 현 정부의 마지막 1년이 될 새해에는 과욕보다 지금까지 해 온 개혁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지속했으면 한다. 여태껏 펼쳐 놓은 이런저런 여러 개혁작업 중 1년 동안 정리가능한 것 만을 골라 겸손히 하나하나 풀어나가기 바란다. 특히 새해 1년은 정치의 해가 아닌가. 한 두가지만이라도 깨끗이 끝맺음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이런 일 가운데 가장 우선되는 것은 1백5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문제다. 구조조정한답시고 GNP 3분의 1에 가까운 막대한 자금을 공짜 자금인양 마구 사용 남용 유용 낭비한 것은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해괴한 일이다. 남은 1년 중 깨끗이 밝히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했으면 한다. 암적 요인 중 가장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것은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다. 어떤 국가프로젝트도,기업프로젝트도 20% 이상 이리저리 미리 빼어 내서는 부실과 껍데기만 남을 수밖에 없다. 고속철도 도로 주택건설 공장건설 첨단무기구입 벤처 등 경제의 온갖 부문에 권력이 침투,비생산화·비능률화케 해서야 어느 경제,어느 기업이 견뎌낼 수 있겠는가.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온갖 게이트,수천억원을 넘어 수조원이 개인금고로 정치자금화되고 있다는 풍문,또 수천만원의 수뢰는 액수가 적어 구속대상도 안된다는 말들은 우리 모두를 아연케 한다. 이런 권력형 비리의 뿌리는 정치(권력) 경제(금력) 사회(명예)가 분립되지 않은 채,오히려 권력이 금력과 명예를 독점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대통령이 되면,국회의원이 되면,검사가 되면,이 셋을 모두 갖는 것으로 되어 있는 제도와 관행과 의식이 존재하는 한 불치의 암적 존재는 제거되지 않는다. 우리는 새해에 감히 바라고 싶다. 기업들은 새해에 '내실''1등''기술개발''중국공략'등을 4대 목표로 삼고 긴축경영에 들어간다는데,제발 '정치의 해'에 정치가 정신을 똑바로 차렸으면 한다. 지금의 정치·경제 구조로선 새 시대 국가경영이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30년의 (긍정적)개발과 (부정적)독재·부패,10년 간의 (긍정적)민주화와 (부정적)무질서·부패를 겪어 왔다. 앞으로 10년 간은 (긍정적)개발과 민주화를 수용하고 (부정적)부패를 척결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한반도는 세계에 우뚝 서는 '부강한 문명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미국,기타 선진 여러 나라보다 우리가 못한 것이 바로 정직과 투명성,깨끗함이다. 이러한 미덕은 대통령이 앞장서 솔선수범할 때만 가시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