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경영판단 '책임' 묻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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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초 삼성은 자신감에 넘쳤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지난달 24일 기자간담회에서 "D램 가격 폭락에도 불구하고 올해 삼성전자 등 전 계열사가 올린 이익은 세전 기준 6조6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구조조정본부는 더 나아가 "이로써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최저 5조원 이상의 이익을 낼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됐다"고 의미 부여를 했다.
이 본부장은 그러면서도 뒤이어 불어닥칠 '사태'를 예감이라도 한 듯 "우리 기업경영 환경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여전히 기업을 움츠러들게 만들어 서글픈 생각도 든다"며 기업에 대한 이해와 지원을 요청했다.
간담회 내용을 보도한 신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법원에서 삼성전자 전·현직 이사들에 대해 9백7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것.노태우 대통령 시절 대기업들이 마지못해 정치자금을 냈던 것은 물론,인수기업의 도산 등 경영판단 실패에 대해서조차 법적 책임을 물은 데 대해 재계 전체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런 와중에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하이닉스반도체의 D램사업을 모두 인수키로 의견이 모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D램시장 2위인 마이크론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꺾기 위한 시도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는 안으로는 기업에 대한 이해부족과 싸워야 하고,밖으로는 극적인 회생의 기회를 잡은 마이크론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어쩌면 이는 애초부터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을 세울 정도로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나라,정부와 의회가 통상압력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국 기업을 일사불란하게 지원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기업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세계적 우량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해당 국가의 신용등급을 넘지 못하도록 한 원칙에 묶여 2류의 신용등급을 받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김성택 산업부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