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엔 고참들, 에이스급 기자가 나가야죠. 관청은 그보다 후배, 주니어 기자들이 담당하는 게 맞고..." 새해를 맞으며 철 지난 취재수첩을 정리하다보니 이런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의 발언으로 기록돼 있다. 서슬 퍼런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98년도 얘기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구조조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장 자율, 다시 말해 시장이 제기능을 찾는 것이었다. 이 기능이 제대로 가동되면 시장의 논리가 모든것을 정리하는 경제 구조로 탈바꿈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새해 벽두부터 진념 경제부총리의 다짐과 언급들이 지면과 전파를 타기 시작한다. "부실기업 정리를 2월까지는 해결하겠다"는 2일의 각오에서는 여전히 관치금융의 색깔이 짙게 배어있다. 4년전 이 금감위원장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국내에서도 관변아닌 시장에서 중요 뉴스가 나올 때가 됐다. 정책발표 같은 관급기사는 이제 지면 뒤쪽으로 밀릴 대가 됐다. 실제로 미국의 월스트리트 같은 곳에서는 유능한 고참 기자들이 시장을 맡고 누니어들이 관변을 담당한다. 시장의 미묘한 움직임을 파악해 의미를 부여하고 당국자를 포함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아직 아니다. 여전히 경험 많은 고참 기자들이 관청을 출입하는게 현실이다. 실제로 재정경제부, 금감위 같은 곳에 취재비중이 쏠리고 출입기자 수도 많다. 취재관행 탓도 없진 않겠지만 아직도 관치가 성행한다는 역설임에 분명하다. 시장이 중심이되고 시장에서 돈과 투자의 흐름이 온전히 결정된다면 노련한 기자들이 관고서로 달려갈 이유가 없다. 대우자동차 매각협상은 채권은행단을 대표해 산업은행이 책임지고, 현대의 증권 3사 매각 역시 현대 스스로 주도하고, 하이닉스반도체도 정부는 아예 관여도 하니 않는 자율 구조조정이 된다면, 해묵은 관치 시비도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임오년은 말의 해다. 정부가 등급과 가격을 매기고 짝짓기가지 해줘 태어난 말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들판에서 자라고 뛰노는 그런 말이 보고 싶다. 허원순.경제부 기자 huhws@hankyung.com